칼럼니스트 2002년 5월 9일 No. 438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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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그해오늘은] 붉은 허무주의



1978년 오늘(5월9일) 이탈리아의 극좌파 '붉은 여단'이 모로 기민당 총재를 죽인다.

이 테러단은 그해 3월 모로를 붙들어 정치범 석방과 흥정했으나 안되자 54일 만에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 사건이 놀라운 것은 모로가 수상을 다섯번이나 역임한 거물 정치인이어서만은 아니다.

냉전 상황에서 한걸음 비켜선 듯한 이탈리아의 좌우대립이 과격한 사실이 놀라웠다.

이탈리아는 무솔리니의 집권으로 2차대전에 말려들었을 때도 그 분위기는 독일처럼 뜨겁지 않아 히틀러의 애를 태웠다.

냉전 상황에서도 이탈리아의 이념대립은 그 비슷해 보였다.

그 정황은 한국에서도 번역된 소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과레스키 작)에서 잘 드러난다.

한 시골에서 우파인 '돈카밀로' 신부와 공산당 지구당 위원장 '패포네'가 맞붙는 이 소설은 너무 인간적인 유머에 차있어 이념대립을 부추기기 보다 그 살벌함을 달래주는 동화 같았다.

하지만 과레스키가 죽기 1년 전인 67년 토렌토대학에서는 한 좌파사상단체가 생겨난다.

이들은 3년 뒤 공장 등에 폭탄을 던짐으로써 '붉은 여단'이라는 존재를 드러내더니 마침내 모로를 죽인 것이다.

이들은 81년에도 나토의 남유럽군 부사령관을 납치하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한동안 조용했다.

그래서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그들도 와해됐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 노동장관 고문 비아기 교수를 죽인 것을 보면 그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상엔 특별한 이상의 실현과 무관한 '허무주의적 테러리스트'가 있기에 좌파는 몰락해도 좌파테러는 사라지지 않는다던가.


- 세계일보 200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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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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