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2일 No. 433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구독신청/해지 | columnist.org |
거꾸로 가는 엘리트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을 움직이는 엘리트 집단은 일반적으로 국회의원, 법조인, 시민단체, 언론인 등을 꼽을 수 있다. 다수를 대표하고 정책 결정 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소수 엘리트 집단, 과연 그들이 움직이고 있는 세상은 바로 가고 있는가?
    엘리트 의식이란 무엇인가? 특권층으로서의 우월감? 아니다. 진정한 엘리트 의식이란 진실을 실천하고 그 진실을 전파해야하는 책임감,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부를 대중들과 나눌 줄 아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다. 남들보다 더 배우고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오른 엘리트들은 자신의 위치만큼이나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대중을 위해 봉사해야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 오늘도 국회는 개점휴업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국회의원부터 살펴보자. 오해와 갈등을 이해와 화합으로 바꾸는 것이 정치다. 막힌 곳을 뚫고 묶인 매듭을 풀어가야 하는 직업 정치인이 국회의원이다. 그러나 의정활동이나 정치 행태는 세기가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반목과 대립 속에서 정책 개발이나 개인의 소신은 뒷전이고 법안이 통과 될 때마다 '거수기' 노릇만 하고 있다. 그래서 생겨난 유행어가 '식물국회'다. 국회가 열려도 경색된 여야 대치로 '개점휴업'이 더 많아 '집에서 애나 보는 의원'으로 희화화(戱畵化)되기도 한다.
    - 권력 앞에 무릎 꿇은 법
    엘리트 집단하면 법조인, 그 중에서도 검찰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 검찰의 위상은 한마디로 만신창이다. 어느 고검장이 퇴임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민의 신뢰와 사랑이 검찰을 떠난 지 이미 오래됐고, 오히려 국가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막강한 권한에 최고의 대접을 받던 검찰이 왜 그 지경에 이르렀는가. 거듭된 인사의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부당한 간섭에서 비롯됐다. 어느 시대이건 정치권력은 검찰권 행사에 개입해왔다. 이러한 외압 이외에도 권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적 성향의 일부 검사들 또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이 됐다.
    - 권력과 금권에 흔들리는 언론인
    우리 시대의 언론인은 어떤가. 1957년 한국신문편집인협회가 언론인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그 후 언론인 연루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각 언론사는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내놓았지만 사문화(死文化) 되고 있는 경향이다. 이 나라의 언론은 전통적으로 정치권력과 재벌의 금권에 유착해왔다. 권(權)·언(言) 유착이요, 경(經)·언(言) 유착이다. 부정부패도 많고 비리도 많은 나라의 언론이고 보니 요즘엔 심지어 '벤·언 유착'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수지 김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윤태식 씨의 벤처기업 '패스21'의 주식을 가진 사람 중 언론인이 무더기로 포함돼 있다는 것도 이제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수많은 사이비 언론인을 배출해 왔지만, 그들을 확실하게 청산한 적이 없었다. 언론계의 자정(自淨)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 시민 편에 서지 않는 시민운동
    시민의 편에서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시민단체 역시 엘리트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시민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국가'와 '시장'이 채워줄 수 없는 다양한 욕구들이 등장했고, 그에 따라 시민단체는 환경, 여성, 지역, 소비,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더욱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시민단체는 일부 운동가 중심의 폐쇄성과 지나친 편가름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한 간부는 "시민단체가 특정 정당이나 정파, 세력 등을 지지하고 이들과 연계해 활동하는 것은 시민운동에 대한 배신행위"라며 시민운동이 관료화·권력기관화되고 있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는가 하면, 시민단체의 다양성과 순수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 엘리트 집단은 대중과 언론으로부터 결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일부 엘리트들의 부정 부패가 일반적인 것처럼 확대 해석된 이유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엘리트 집단이 대중들에게 신뢰받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지식인이란 온갖 모순과 갈등이 뒤엉킨 사회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 그 진실을 옹호하고, 그 진실을 실천하고, 그 진실을 전파하는 존재여야 한다" 작가 조정래 씨가 대하소설 '한강' 전 10권을 탈고하며 최근 밝힌 말이다. 엘리트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지식인이다. 우리 사회가 바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선비정신일 것이다. 선비정신이란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의롭게 행동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로부터 선비는 인격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에 힘쓰며 대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지조를 갖추고 말과 행동이 일치했다. 현실적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을 비판하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기 의견을 제시하였다. 학문과 덕을 겸비하고 대의를 위해서는 대쪽처럼 꼿꼿하게 행동해 왔다. 그것이 옛날 엘리트 계층의 표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스의 러셀 루이스 사장이 워싱턴포스트지 기고를 통해 '기업 비리를 캐는 데 언론이 게을렀다'며 전체 언론의 각성을 촉구한 일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다. 현재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에너지기업 엔론 사태에 사전경고음을 내지 못한 책임을 언론인 스스로 통감했다는 점, 그리고 반성문을 경쟁관계인 워싱턴포스트지에 게재했다는 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나라 엘리트들의 모습도 차츰 희망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의식 있는 엘리트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 요즘에는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꼬집고, 투명한 사회로 바꾸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6대 4.13 총선 때 등장한 386세대 정치인들. 그들 역시 기존의 정치에 새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대중의 기대는 저버리고 말았지만, '대중이 원하는 정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계기를 제공했다. 언론이나 검찰 측에서도 권력이나 금권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 있는 수사와 공정 보도를 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다. '검찰은 '눈' 없고 특검만 '눈' 있나' 라는 헤드라인으로 최근 한국기자협회 편집상을 수상한 기자나, 취임사에서 "무사는 얼어죽더라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고 강조한 이명재 검찰총장, "중립에 서지 않고 의약분업을 지지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고 선언한 시민운동 단체 등 엘리트들 스스로 그 동안의 문제점을 깨닫고 지향해야 할 방향을 찾아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엘리트들은 개인의 영달이나 물질적 추구보다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권력을 국가와 대중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말이 앞서는 빈 껍데기뿐인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행동하는 엘리트들이 필요하다.

-웹진 '인재제일' 3,4월호(2002.04)

-----
이규섭
Florist Meister Schule 기획이사
시인 ·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