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5월 1일 No. 432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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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나뒹구는 개인 신상정보

지금의 정보화사회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남에게 제공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구조를 안고 있다. 이는 거의 모든 체제가 디지털화 됨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매일 같이 이용하는 신용카드를 발급받거나 인터넷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개인의 정보를 다른 곳에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보화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정보가 철저히 보호돼야 함은 물론이다.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경우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보가 송두리째 남에게 넘어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섬뜩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같은 우려를 훨씬 넘어설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종종 확인하게 된다. 설마하면서 믿고 제공했던 자신의 정보가 제멋대로 유출되어 아무 죄없이 큰 피해를 입는 일도 생기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문제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음을 우리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하겠다.

엊그제 서울 도심의 대로에서 개인신상에 관한 정보가 상세히 기록돼있는 대출관련서류가 수천 장이나 뒤덮고 있어 구청직원들이 이를 수거하느라 진땀을 흘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서류종이에는 개인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는 물론 은행계좌번호와 비밀번호까지 적혀있었으니 TV뉴스를 보는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구청의 한 간부의 말로는 쓰레기더미가 도로에 떨어져 터지면서 지나가는 차들에 의해 이리저리 날리면서 길바닥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청직원들이 2시간 동안이나 회수작업을 벌였으나 몇 장이 분실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서류들은 서울의 한 대출알선업체에서 유출된 것이라는 것만 확인됐을 뿐 정확한 경로는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날 유출된 개인정보가 장본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개인정보가 유출돼 피해를 입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몇달 전에는 길거리의 신용카드모집인들이 신용카드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빼내 거액을 가로챘다가 경찰에 적발된 일이 있다. 이들은 고객들이 작성한 신용카드회원 신청서를 따로 복사해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유효기간 등을 이용하여 실물카드가 필요 없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인터넷 카드할인, 메일뱅킹 등을 통해 1억4천여만원을 가로챘던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피해자들은 억울하다며 대금납입을 거부했다가 신용불량자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고 한다.

민간의 금융회사 뿐만 아니라 관공서에서도 시민들의 신상정보 보호에 소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개인의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적힌 관공서의 서류들이 노점상이나 행상들이 쓰는 봉투로 만들어져서 마구잡이로 유통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시흥시청으로부터 폐기용 공문서 처분을 위탁받았던 재향군인회 경기사업소측이 문서들을 규정대로 소각하거나 파기하지 않고 봉투제조업자에게 팔아넘겼다가 말썽이 되기도 했다. 시민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신용카드 번호 등 수천 명의 개인정보가 속속들이 기재돼 있는 서류들이 물건을 담는 봉투로 만들어져 노점상이나 행상들에게 팔려나갔던 것이다. 서류는 시청에서 취급하는 과세내역서였다.

이 뿐만 아니다. 지난 23일 정보통신부에서 전화번호부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유선전화번호 외에 휴대전화번호 및 인터넷주소를 통합제공하겠다고 발표해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무분별한 개인정보유출로 야기될 수 있는 사생활침해를 정부기관이 오히려 주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이동전화회사들의 반발은 더욱 컸다. 가뜩이나 휴대전화번호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노출되는 바람에 가입자들이 상품구매 등 불필요한 전화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앞장서서 휴대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정통부측은 휴대전화번호의 일반공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어지자 좀더 논의를 해보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개인의 사생활보호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정부당국의 이 같은 발상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하겠다.

개인정보 보호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산하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침해신고건수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침해사례는 1만4341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무려 7.2배가 늘어났다. 올 1월부터 3월까지 신고된 것은 640여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0배 가까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보호법은 개인정보 침해를 막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도용한 경우 5000만원 이하의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그러나 벌금형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같은 개인정보 침해 사례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화사회에서 개인정보가 예사롭게 유출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국가안보 및 사회규범 확립의 차원에서도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우리사회의 정보화는 발목을 잡힌 채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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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전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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