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2002년 4월 26일 No. 431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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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그해오늘은] 체르노빌 원폭



1986년 오늘(4월26일) 새벽 소련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부근 주민들은 사상 최대의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원전 4호기의 원자로가 불길에 윗부분이 터져 엄청난 불길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수많은 불꽃들이 튕겨 나왔으니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 구경은 대가가 너무 컸다. 그 구경꾼들 가운데 지금도 몸이 성한 사람이 몇인가는 따지기도 객쩍다. 몇이나 살아 있는가를 따지는 게 철들은 짓이다.

살던 고장서 쫓겨나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체르노빌 원전발전소 사고'로 알려진 이 사건은 차라리 '체르노빌 원폭 사고'였다.

전쟁은 아니라지만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350배나 되는 원자력이 폭발한 것이 우선 그렇다.

나가사키 원폭이 투하된지 6일 만에 일본이 항복하듯 이 사고 6년 뒤에 소련이 붕괴한 것도 그렇다.

그것은 우연만도 아닌 것으로 이 사고에는 소련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었다.이 사고는 관료주의적 풍토에서 발생해 그 후 처리도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소련정부가 사고 이틀 뒤인 28일에야 "작은 사고가 났으나 걱정할 것은 없다"고 발표한 것이 그렇다. 그 때는 이미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돼 큰 사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자로의 구조적 결함에서 생겨난 사고를 '단순한 운전조작'이라고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민들을 즉각 대피시키지 않고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한 것은 비정한 인명경시였다.

그래놓고는 중앙의 공산당 고위간부들이 현지에 사는 친지들을 빼내거나 전화나 전보로 빨리 피하라고 한 것은 정권이 썩은 것이었다.

히로시마 원폭과 다른 점은 적국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살테러단처럼 스스로 터뜨린 점이다.


- 세계일보 200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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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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