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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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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그해오늘은]
체르노빌 원폭
원전 4호기의 원자로가 불길에 윗부분이 터져 엄청난 불길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수많은 불꽃들이 튕겨 나왔으니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 구경은 대가가 너무 컸다. 그 구경꾼들 가운데 지금도 몸이 성한 사람이 몇인가는 따지기도 객쩍다. 몇이나 살아 있는가를 따지는 게 철들은 짓이다. 살던 고장서 쫓겨나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체르노빌 원전발전소 사고'로 알려진 이 사건은 차라리 '체르노빌 원폭 사고'였다. 전쟁은 아니라지만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의 350배나 되는 원자력이 폭발한 것이 우선 그렇다. 나가사키 원폭이 투하된지 6일 만에 일본이 항복하듯 이 사고 6년 뒤에 소련이 붕괴한 것도 그렇다. 그것은 우연만도 아닌 것으로 이 사고에는 소련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었다.이 사고는 관료주의적 풍토에서 발생해 그 후 처리도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소련정부가 사고 이틀 뒤인 28일에야 "작은 사고가 났으나 걱정할 것은 없다"고 발표한 것이 그렇다. 그 때는 이미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돼 큰 사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자로의 구조적 결함에서 생겨난 사고를 '단순한 운전조작'이라고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민들을 즉각
대피시키지 않고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한 것은 비정한 인명경시였다.
그래놓고는 중앙의 공산당 고위간부들이 현지에 사는 친지들을 빼내거나 전화나 전보로 빨리 피하라고 한 것은
정권이 썩은 것이었다. 히로시마 원폭과 다른 점은 적국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살테러단처럼 스스로 터뜨린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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