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칼럼니스트 No. 423
2002년 4월 12일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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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그해오늘은] '프로메테우스-1954'



1954년 오늘 미국의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보안청문회에서 사상을 검증받는다.

그는 2차대전중 원폭개발을 지휘해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앞당긴 공신이었으나 냉전상황에서 수폭의 개발에는 반대했던 것이다.

때마침 광기를 부리던 매카시즘으로서는 좋은 먹이를 찾은 셈이었다.

그것은 냉전시대의 색깔논쟁을 떠나 20세기판 그리스 신화로도 볼 수 있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이 쪼여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

이 사건은 9년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을 때 이미 전조가 비쳤다.

오펜하이머는 루스벨트를 설득해 원폭을 개발했으나 히로시마의 참상에 놀라 "세계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됐다"고 자탄했다.

트루먼 대통령에게는 "내 손은 피로 물들었소"라고도 했다.

그래선지 원폭 개발에는 계속 참가하면서도 광범한 지역을 무차별로 초토화시키는 대형 원폭이 아니라 소형의 전술핵탄을 개발하자고 했다. 수폭 개발에 반대한 것도 대체로 그런 맥락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원폭실험에 성공하고 중국이 공산화된 49년의 상황에서 그는 의심을 받았고 뒤이어 매카시즘 광풍이 불자 과학계에서는 첫 표적이 됐다.

그는 청문회를 통해 소련과 내통했다는 등의 혐의는 벗었으나 핵관련 사업에서는 밀려나 학계로 돌아갔다. 그 9년 뒤 존슨 대통령은 엔리코페르미상을 줌으로써 사죄의 뜻을 비친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념문제를 떠나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화두를 도입한 점에서 잊힐 수 없다.

'제3의 불'을 인류에게 가져온 20세기 프로메테우스들이 정신적으로 형벌을 받은 것은 오펜하이머만도 아니고 미국에서만도 아니었다.

소련에서 수폭을 개발한 대표적 과학자면서도 반체제의 상징이 된 사하로프의 수난도 연원은 비슷한 것이다.


- 세계일보 200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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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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