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칼럼니스트 No. 422
2002년 4월 11일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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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그해오늘은] '혁명'이라는 大魚



1960년 오늘 마산 중앙부두에서 한 낚시꾼이 손에 묵직한 감촉을 느꼈다.그래서 신나게 줄을 당긴 그는 이내 기급하고 만다. 물고기가 아닌 사람이 올라와서였다.

태공이 기급한 것은 그것이 시체여서만은 아니다. 오른쪽 눈에 20㎝ 길이의 최루탄이 깊숙히 박혀서였다.

월척의 꿈은 악몽처럼 깨졌으나 헛낚시질은 아니었다. 혁명을 낚은 것이다.

3.15부정선거 규탄데모 끝에 실종된 마산상고 1년생 김주열(金朱烈)은 28일 만에 주검으로 나타나 자칫 꺼질 뻔한 저항의 불길에 다시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자유당의 마지막 발악인 이 부정선거로 벌어진 마산시위는 16명의 사망자와 72명의 부상자를 낳았었다.

그 북새통에 실종됐던 어린 고교생이 뒤늦게 참담한 시체로 떠오른 것은 정권의 불행이었다.

당시 경찰은 의거가 공산당의 사주라며 시체의 호주머니에 붉은 문서 같은 것을 넣어 조작하기도 했다.그러나 어린 김주열에게 그런 붉은 물감이 먹힐 수는 없었다. 굳이 붉은 것을 찾자면 이름의 '주'(朱) 정도였다.

그것은 며칠 뒤 서울대 4.19선언문의 "나이 어린 김주열의 참시를 보라. 그것은 가식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벌거벗은 나상" 그대로였다.

마산시민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다. 경찰과의 시체 쟁탈전으로 시작된 시위는 또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고 진압되는 듯했으나 시위는 마산시민만의 몫은 아니었다.

그렇게 자유당은 갔으나 남원 태생으로 마산에서 죽은 김주열의 영혼이 편할지는 의문이다.

그를 기리는 노래로 한동안 영호남에서 애창했던 '남원땅에 잠들었네'(한복남 작곡)는 오랫동안 무색하게 됐다.

당시의 붉은 물감은 그 뒤에도 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둔갑시켰고 지금도 퇴색된 채로 재고가 있다.


- 세계일보 200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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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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