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칼럼니스트 No. 421
2002년 4월 10일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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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문화행사의 방향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한국인들에게는 어느 대회보다 관심 깊게 보아야 할 대상이었다. 바로 그 앞 대회를 88년 서울에서 치렀기 때문이다. 당국은 서울 올림픽 성공으로 세계인들에게 한국과 그 문화를 알리는데 큰 효과를 거뒀다고 과장에 가까운 자찬을 하고 일반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뜻 있는 일부 식자층만 그런 식의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행사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우려를 소극적으로 표출할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우리를 밖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한국은 메달경쟁에서 기대이상의 선전을 했다. 따라서 서울 올림픽에서 이루어낸 스포츠 강국과 문화국가의 이미지가 세계인들에게 연이어 각인되었다고 자부하는 여론이 높았다.
    정말 그랬을까.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서울 올림픽을 과연 그렇게 보여주었던가. 아니었다. 우리의 기대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역대 올림픽의 특징을 소개하는 책자를 보니 바로 4년 전에 열린 서울올림픽은 찾기조차도 힘들었다. 처음에는 책자를 만든 측의 실수인 줄 알았다.
    왜 서울올림픽과 한국 문화는 이처럼 언급조차 없는가를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너무 창피해 그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할 흥미를 잃었다.
    그들은 우리의 올림픽 진행과정을 놀라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군사독재정권이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올림픽과 그 부대행사들이 거의 국민 동원 차원에서 반강제적 관 주도로 행해져서 그 순수성이 훼손되었다는 눈초리였다.
    그들의 평가에 부당한 것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맞았다. 198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86년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유치한 정부의 거의 광적인 국민 계도와 홍보 때문에 행사를 치른 게 아니라 홍역을 치렀다는 느낌을 가질 정도로 요란했다.
    자유의지와 양심, 순수성을 지향하는 문화예술 행사도 정부의 강력한 힘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그 뜻에 비위를 맞추려는 일부 어용문화인들이 자행한 폐단도 없지 않았다. 당시 웬만한 문화행사는 모두 서울 올림픽 문화행사라고 내세웠다. 탄탄한 준비를 거쳐 완성도 높은 내용을 자랑한 행사도 있었지만 이에 못지 않게 급조하거나 문화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인 것들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 행사일수록 소리만 요란하고 문화 외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문화행사는 이 같은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올림픽 문화행사 조직위원회가 있었지만 규모도 매우 작았고 하는 일도 별로 많지 않았다. 공연예술 등 몇 개 분야만 조용히 추진되었다. 그리고 그런 문화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나 포스터 같은 것은 시내에서 거의 없었고 공연장에서나 겨우 한 두 개 볼까말까할 정도였다. 이러한 외형에 비해 그 내용들은 매우 알찼다.
    그렇다고 바르셀로나의 문화 기반이 빈약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와 정반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구엘 공원을 비롯 전 시내에 널려 있고 살바도라 달리, 후안 미로 등 대가들의 미술관이 일년 내내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 피카소가 젊었을 때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시내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가득 찼다고 할 만 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바르셀로나 일원만 해서 이런 정도지 스페인 전체로 보면 테너 플라치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를 비롯해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 같으면 그 많은 미술관, 건축물, 공연 등을 모두 올림픽 행사라는 이름으로 치레하고 요란하게 떠들테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면서 풍부하고 수준 높은 그 문화를 조용히 과시했다. 어느 점에서는 거만함을 느낄 정도로 당당했다.
    바르셀로나만 그런 게 아니다. 스포츠 축제를 개최한 문화선진국들은 거의 다 조용하면서도 알차며 국민의 일상생활과 밀착된 문화행사를 치른다. 겉으로 봐서는 그 지역에서 거대한 스포츠 축제와 문화행사가 열리는 걸 전혀 낌새도 못 챌 정도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구호와 캠페인, 궐기대회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5월부터 열리는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문화월드컵이라는 이름의 문화행사가 전국에서 준비되고 있다. 이에 투입된 예산은 459억 원이다. 개막식 문화행사비가 105억 원, 개막전야제 비용이 110억 원, 조 추첨 문화행사비가 47억 원, 각 개최 도시 별로 10억 원 정도 지원, 기타 사업비 등으로 97억 원이 책정됐다고 했다.
    인지도가 세계 정상급이며 그 문화에 대한 세계인들의 욕구가 대단한 일본과 공동으로 대회를 연다는 점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외국에서는 일본과 중국의 것은 잘 알아도 한국에 대한 인식은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반면 이 기회에 우리의 문화예술 수준을 정확하고 폭넓게 알릴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문화월드컵 예산이 넉넉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서울 올림픽 당시보다는 훨씬 세련되었지만 아직도 문화행사에 대한 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며 억지 춘향격 행사가 끼어 들 여지가 많은 점이다. 행사를 위한 행사 성격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주관하는 FIFA는 순수한 민간단체인데다가 축구에 대한 초점이 흐려질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부대 문화행사가 지나치게 비대하거나 요란한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즉 조용하면서도 알찬 그리고 민간주도의 행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에 비추면 문화월드컵 행사 준비와 진행방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우리 것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즉 꾸밈없이 성의껏 잘 다듬어 내놓으면 된다. 구호와 계도, 관의 입김을 줄이고 문화예술인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한 관계자가 일본측 문화행사 담당자에게 준비과정에 대해서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 특별히 할 것은 별로 없다. 우리가 가진 문화예술을 평소처럼 보여주면 된다. 대회 직전 손님맞이 차원에서 택시의 시트커버나 바꾸면 된다"
    우리 문화예술계와 관계당국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우리 문화의 진면목을 전 세계에 조용하면서도 의연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문화타임즈 200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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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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