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칼럼니스트 No. 419
2002년 4월 7일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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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종말시계

    "지구를 떠나 처음으로 그걸 보았을 때 그 아름다움, 생명감에 눈을 빼앗기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연약함을 느끼게 되었다. 저 멀리 지구가 오도카니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외 다른 어느 곳에도 생명은 없다. 자신의 생명과 지구의 생명이 가느다란 한 가닥 실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언제 끊어져 버릴지 모른다. 둘 다 약하디 약한 존재이다. 이처럼 무력하고 약한 존재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971년 달을 탐사한 바 있던 아폴로 15호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은 우주 속에서 지구와 인간이 얼마나 허약하고 무력한 존재인가를 이렇게 전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패를 갈라 싸우며 자신들의 서식처를 계속 파괴하고 있다. 다른 우주비행사 에드가 미첼은 지구 밖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더욱 절감했다고 한다. 우주에서는 전혀 보이지도 않는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인류가 마치 난폭하게 달리다 절벽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미친 돼지 떼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집단자살을 시도하면서도 그걸 모르는 인간과 그 우매함에 그는 절망했다.
    이 어리석음이 촉발할 지구재앙 시각을 측정하는 것이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다. 즉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종말 위험도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시계로 '운명의 날'또는 '심판의 날' 시계라고도 한다. 1947년 미국의 핵무기 개발계획에 참여했던 아인슈타인 등 시카고대학 과학자들이 핵전쟁으로 인류가 사라지는 시점을 자정으로 설정하여 고안한 것이다. 그리고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인류의 위협에 대한 증감 여부를 반영하고자 주기적으로 조정되어왔다.
    1947년 오후 11시 53분을 가리키도록 설치된 이래 그동안 17차례 조정되었다. 자정에서 가장 멀었던 시기는 냉전이 종식된 1991년의 11시 43분이었으며, 자정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는 1953년 미국과 소련의 수소폭탄 실험 때로 자정 2분전을 가리킨 바 있다. 1998년 이후 11시 51분을 가리키던 이 시계는 지난 2월말 2분 더 앞으로 나가 자정 7분전이 되었다. 9·11 테러와 미국의 일방적 외교정책, 핵무기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긴장 고조, 세계 테러그룹의 핵무기 입수 시도 등으로 핵전쟁 발발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다.
    멍청한 인간의 집단자살 시도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우주비행사들이 전쟁 못지 않게 입을 모아 걱정하는 것이 대기오염과 환경파괴다. 우주에서 보면 그 참상이 뚜렷이 보인다는 것이다. 핵전쟁위협이 급성질환이라면 환경파괴는 만성질환인 셈이다. 중층 복합적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언제나 끝이 날 것인가. 생각할수록 절망의 구렁텅이는 더욱 깊고 어두워 보일 뿐이다.


- 삼성 웹진 '인재제일' 3,4월호(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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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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