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칼럼니스트 No. 417
2002년 4월 3일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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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체

    '서울은 도시가 아닌 거대한 촌락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도시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무식하게 커지기만 했다는 뜻이다. 사실 서울은 교통, 소음, 공해, 주택, 의료체계 등 여러 가지가 시민들 편의와는 거리가 멀다. 덩치는 도시이지만 기능은 촌락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도시계획을 마련할 틈도 없이 한국전쟁과 산업화 이후 급속히 밀려드는 인구 때문에 불가피한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거대한 촌락'이라는 지적에는 이보다 더욱 심한 비난이 들어 있다. 즉 도시 시설보다 그 속에서 사는 주민들 수준이 도시민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우리는 늘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둔감하지만 외국인 대다수는 서울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차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데도 운전자들 예의와 질서의식은 거꾸로 가고, 보행자들 역시 다른 사람들의 불편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태도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휴대전화 이용자 수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그 사용태도는 완전히 밑바닥이다. 아무 곳에서나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떠드는 걸 보면 기가 질린다는 외국인들이 많다. 한국인들의 큰 목소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음식점, 지하철, 엘리베이터, 사무실, 길거리를 가리지 않고 마치 싸우는 것 같다. 서비스업체 종사자들의 불친절, 이에 못지 않은 이용자들의 무례함도 도저히 못 말릴 지경이다. 아파트가 주거형태로 정착한지 수십 년이 되었건만 공동생활에 필요한 질서의식은 입에 올리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인터넷 이용자 수 역시 세계 정상급이지만 네티켓은 형편없다. 길거리는 물론 공공시설 안에서까지 아무렇지 않게 침을 뱉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마디로 도시와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모든 시설을 이용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시민들이 많은 것이다. 촌락이 아니라 자기 혼자 사는 집에서도 해서는 안 될 무례한 행동들을 예사로 자행하니 한심할 뿐이다.
    이처럼 물질문화는 급속히 발전하는데 이에 대한 비물질문화 이른바 예의나 질서의식 또는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가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현상을 미국의 사회학자 W.F.오그번은 문화지체(cultural lag)라고 했다. 따라서 문화지체는 우리만이 아닌 세계적 현상이고 어느 선까지는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도가 지나치다. 시설과 기기 사용에 익숙해지면 그에 따른 예의도 빨리 습득해 문화지체를 해소해야 하는데 시민 대부분이 그런 노력을 아예 하지 않고 있다. 언제 이런 후진적 상태에서 벗어날지 한심할 뿐이다.


- 삼성 웹진 '인재제일' 3,4월호(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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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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