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칼럼니스트 No. 416
2002년 3월 31일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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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계절이 순순히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앞뒤 철이 공방전을 거듭하며 노약자는 물론 건강한 이들의 심신까지 위협하는 일이 흔하다. 그 가운데서도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시기가 가장 까탈스럽다. 속 좁은 여자의 심술처럼 경망스럽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 공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근년에 이르러서는 그 작태가 더욱 심해 봄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속을 긁어 놓기 일쑤다.
    툭하면 잇따른 건조한 날씨에 황사(黃砂)현상까지 겹쳐 사람들을 괴롭히고,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아침나절에는 봄이 이제 다 온 것 같아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가 오후 들어 거칠게 불어대는 바람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 기운에 시달리는 일이 다반사다.
    꽃샘추위 등 봄의 행패는 그밖에도 다양하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이 북상하는 속도는 보통 하루 25~27km라고 한다. 가을을 몰고 오는 단풍의 남하 속도 역시 25km 정도로 꽃의 진군 속도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왜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험하고 힘든가.
    기상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3~4월은 시베리아 고기압의 성쇠에 따른 한난이 자주 교대, 기온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폭이 크기 때문에 봄을 봄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4월은 일년중 기온의 일교차가 가장 크다. 또 늦서리가 자주 내려 농작물은 물론 사람들의 건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 3월에는 4일 주기성이 강해 사람들을 심란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첫날 대륙에서 분리된 이동성고기압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면 날씨가 화사하다가 둘째 날은 이동성 고기압이 통과하며 날씨가 점차 기울어져서 비가 내린다. 셋째 날은 저기압이 통과, 다시 대륙에서 고기압이 발달하여 서~북서풍이 강하게 불며 기온이 내려간다. 넷째 날은 대륙의 고기압도 약해지고 다음의 이동성고기압이 좋은 날씨를 가져온다.
    그래도 사람들은 봄을 기다린다. 누가 뭐래도 희망과 부활, 생기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이 다 같이 절박하게 기다린다. 기다리는 심정이 진하면 진할수록 오는 것은 더디지 않던가. 약속 장소에 늦게 오는 사람이나 정거장에서 연착한 열차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그 이하는 아니다.
    그에 대한 인간의 기대심리가 계절의 기상 특징과 복합작용을 일으켜 봄에 대한 애증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자연적 특징만으로도 진행속도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까지 가세하니 봄은 우리한테 그렇게 지루하게 오면서 온갖 요사를 다 떠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들이 미워하기는커녕 더욱 그리워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봄은 조급한 이들을 약올리듯이 곳곳에서 기척을 보내다가 아는 체 하면 얄밉게 딴전을 피운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차가운 하늘에 날려보내는 솔바람 소리, 창밖에 떠드는 아이들 소리, 늦은 오후 창가에서 헤살대는 가녀린 햇살, 진눈깨비로 질척대는 거리의 조그만 웅덩이 물, 거의 죽은 듯이 보이는 나뭇가지 끝, 어느 새 달라진 새 울음 소리 틈에서 술래잡기하듯 들락거린다.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가까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라는 뜻일 게다.
    盡日尋春 不見春(진일심춘 불견춘)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芒鞋遍踏 농頭雲(망혜편답 농두운)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농'자는 防과 같은 변에 龍)
    歸來笑然 梅花臭(귀래소연 매화취)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春在枝頭 已十分(춘재지두 이십분)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지은이가 알려지지 않은 고대 중국 어느 스님의 게송(偈頌)이다. 봄을 찾아 멀리 헤매다 허탕치고 돌아오니 그건 이미 집에 와 있더라는 내용이다. 즉 행복은 언제나 불행의 바로 옆에 엎드려 있으므로 멀리 돌아다니면서 찾을 게 아니라 항상 희망을 갖고 주변에서 발굴하라는 것이다.
    정인보 작사 이흥렬 작곡 '새해의 노래'에는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앞의 한시보다 더욱 적극적이어서 봄을 자신이 직접 만들고 가꾸라는 것이다. 그렇다. 봄이 오는 대로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희망에 맞도록 디자인하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아무리 봄이 해찰부리며 와도 우리는 느긋이 맞이할 수 있다.


- '복지' 3,4월호(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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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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