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3월 22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410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무료구독신청 및 해지 | http://columnist.org |

3월 22일 [그해오늘은] 예술적 임종



1832년 오늘 괴테의 임종은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숨지는 순간 '메르 리히트(Mehr Licht.보다 많은 빛을)!'라고 외쳤다는 소문도 그렇다.

무슨 심오한 뜻이 담겼는지 아니면 그저 방이 어둡다는 말이었는지는 물론 참말인지 거짓말인 지도 아리송하나 그것은 대문호의 생애를 장식하는 에필로그 같이 됐다.

'메르 리히트'가 아니라 '메를리히트'라고 했고 그것은 바로 옆집 하녀의 이름이었다는 말도 있으나 그것도 예술적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빅톨 위고가 70세에 젊은 하녀에게서 아이를 본 것과는 달리 괴테는 만년에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러나 72세에 푸른 눈에 갈색 머리의 17세 소녀 울리케를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사랑은 성공하지 못했으나 그 뒤 울리케는 수녀가 됐다.

이 밖에도 그는 만년에 두차례나 연애를 한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유부녀들과의 사랑으로 몇차례 '젊은 괴테의 슬픔'을 맞보나 자살이 아니라 예술창작으로 마무리지었다.

그래서 괴테의 삶과 문학에는 비슷비슷한 여인들이 넘나들지만 그는 여성과 문학만이 아니라 지식 전반을 사랑하며 이를 실천했다.

변호사로 출발한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 먼저 이름을 떨쳤다.

그 뒤 문학에 발을 디디나 철학과 과학은 물론 연금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기에다 그림 그리기를 즐겼으니 그는 다빈치 같은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동물에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해 비교해부학의 선구자로 꼽힌 것이 그렇다.

그는 말년에도 여성과 함께 흑맥주를 사랑했다.

어쩌면 그는 '메르 리히트'가 아니라 '메르 슈바르츠비르(Schwarzbier.흑맥주)라고 했는 지도 모른다.


- 세계일보 2002.03.22

-----
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olumnist.org

c o l u m n i s t @ c o l u m n i s t . o r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