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3월 1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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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들

    봄이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지만 맞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선 이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몇 년째 불경기로 거덜난 서민들의 생활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없는 데다 각종 비리와 부정으로 국민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전과 일자리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가 두려워 대학생들은 휴학 등으로 학생신분을 연장하며 교문을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올해는 그 현상이 더욱 심해 이번 졸업 대상자인 98학번 학생들이 대부분(학교별로 60∼80%) 학교 안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절대빈곤 시절인 1950년대나 1960년대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니 울화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게(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스산한 계절이다.
    '춘래불사춘'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왕소군(王昭君)'이란 시에서 비롯되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BC 4세기)의 후궁으로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힌다. 당시 흉노에 시달리던 한나라는 우호수단으로 후궁 한 명을 보내기로 했다. 거기에 뽑히지 않으려고 후궁들은 초상화 담당 화공에게 앞다투어 뇌물을 주고 실제보다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왕소군은 그리 하지 않았다. 이에 화공 모연수(毛延壽)는 그녀를 제대로 그리지 않았고 초상화만 보고 심사를 한 황제는 왕소군을 선발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나려고 말에 오를 때 보니 초상화와 달리 절세 미인이었다. 너무 아까워 땅을 쳤으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화가 난 황제는 화공을 참형(斬刑)에 처했다. 그녀는 흉노 땅에서 항시 눈물로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죽었다. 그 원한이 맺힌 건지 나중에 황무지에서도 그녀의 무덤에만은 풀과 꽃이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 비극은 그 뒤 수많은 중국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동방규의 이 시구는 널리 애송되었다. 또 실제 날씨가 봄답지 않은 것은 물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되지 않을 때 언론 등에서 은유적으로 많이 인용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사회 진출 지연은 개인에게는 물론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국가와 사회는 이 점을 중시해 국민과 청년들에게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왕소군 무덤에만 풀과 꽃이 피었듯이 우선 젊은이들 앞길에 만이라도 새싹이 나도록 해야 한다. 봄이 봄답지 않고 청년들에게 생기가 없으면 그 나라 장래는 뻔하기 때문이다.




- 웹진 '인재제일' 3,4월호 (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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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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