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3월 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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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그해오늘은] '智異山 특파원'



1997년 오늘 숨진 '남부군'의 작가 이우태(李愚兌)의 비명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이름부터 '이태'(李泰)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신분도 기자 빨치산 정치인(국회의원)으로 변신을 거듭하다 작가로 삶을 마감한다.

따라서 '작가'라고 쓰면 무방하나 이력서 앞부분의 기자를 내세워 '지리산 역사특파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제천 태생으로 서울신문을 거쳐 합동통신기자였던 그가 지리산에 들어간 것은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6.25를 맞아 징발되듯 조선중앙통신사의 전주지사에서 일하다 유엔군의 반격을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리산에 몰린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수많은 젊은 생명'의 하나로 그곳에 갔으나 이들의 이야기를 남김으로써 '역사특파원'이 된다.

그가 88년에 내놓은 '남부군'으로 그때까지 '공비'(共匪)라는 무기질의 이름속에 갇혀 있던 생명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마비된 역사의 한 페이지도 살아났다.

물론 6.25전인 48년부터 5년간 1만여회의 교전에서 2만명 이상의 젊은이가 숨진 지리산의 이야기는 이태의 '남부군'이 없어도 묻힐 수는 없다.

그러나 이념의 금기에 묶인 난세의 이야기가 사실대로 전해지기는 어렵고 '예술적'으로 감명을 주기는 더 어렵다. 그 젊은 죽음들에서 문학이 배제될 경우 그것은 '공비의 죽음'이나 고작 '역사의 비극'이라는 상투적 포장에 묻힌 채 잊혀질 일이다.

그 현장에 기자의 눈과 예술인의 가슴을 갖춘 이가 있었던 것은 새삼 반가운 일이었다. 메모도 없던 그가 과거의 일을 정확히 추적해낸 것도 처음부터 그런 안목이 있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단 한명의 생명도 살려내지는 못했으나 우리의 가슴속에 아프나 소중한 역사를 되살릴 수 있었다.


- 세계일보 200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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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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