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3월 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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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그해오늘은] '어린이'



오늘날 '어린이'라는 잡지가 있다면 잘 팔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너무 흔한 이름이어서 책을 열어 보려는 이도 드물 것만 같다.

그러나 1923년 오늘 방정환(方定煥)이 창간한 '어린이'는 낯선 이름이었다.

방정환은 그 2년 전부터 '어린이'라는 존칭을 만드는 한편 존대말을 쓰자는 운동도 폈으나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잡지가 창간되고 그해 5월1일 방정환을 주축으로 한 색동회가 어린이날을 제정함으로써 '어린이'는 일상어가 된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환경도 바뀐다.

어린이들이 '어린 것들'이나 '애 새ⅹ'로 불리던 시절, 그들이 무시당하거나 구박 받는 것은 약과였다.

많은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로 허약한 몸에 누더기 같은 입성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소파는 거기서 민족의 새싹을 본다. 그로부터 약 반세기 뒤인 57년에 제정된 어린이헌장에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는 구절도 지하에 있는 소파의 염원을 담은 것이었다.

그래서 일제의 눈에 비친 소파는 '어린이 대장'처럼 철없거나 평화로운 존재는 아니었다.

3.1운동 당시 보전 학생으로 '조선독립신문'을 등사판으로 만들었다가 검거된 그는 원래 '불령선인'이었다. 그래서 순종 승하 같은 시국을 만나면 예비검속 대상이 됐다.

일제의 탄압으로 '어린이'는 34년 폐간되고 어린이날도 39년 중단된다.

그것이 보기 싫었던지 소파는 31년 젊은 나이(32)에 눈을 감으나 "어린이를 부탁하오"하는 말을 남긴다.


- 세계일보 200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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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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