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3월 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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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통역의 도구가 되는 휴대폰

「은퇴한 독일어 교수인 K씨의 휴대폰이 모처럼 울렸다. 홍도(紅島)의 어느 여관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외국 사람이 전화번호를 주며 걸어달라는 전화라고 했다. 언젠가 세미나에서 명함을 주고받은 일이 있던 독일인 교수였다. 자기는 한국의 온돌방에서 자 보고 싶은데 주인은 막무가내 침대방을 내준 것이다. 손짓 발짓 승강이 끝에 구원을 청해온 전화였던 것이다. 1분도 안되는 K교수의 통화로 모든 것은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이상은 어제(26일) 중앙일보에 예문으로 게재된 신문기사이다. 이 기사는 홍도를 찾은 독일인이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여관주인과 의사가 통하지 않자 독일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용무를 얘기함으로써 일을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인용문과는 반대로 외국어를 잘 모르는 여관주인이 외국인을 만났을 때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외국인과 대화하도록 한 뒤 다시 그 사람과 통화를 하면 외국어를 몰라서 겪게 되는 불편은 상당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시스템화하면 어떨까. 한국인과 외국인이 만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 외국어를 잘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곧바로 전화(휴대폰)을 걸어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통화하게 하면 웬만한 일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중앙일보사에서 펼치려고 하는 「BBB 시민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한국사람과의 의사소통이 잘 안될 경우 그 자리에서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걸어 즉시통역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취지라고 한다.

우리들이 외국사람들을 만났을 때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알아듣기가 무척 어렵다. 그럴 때 그 나랏말을 잘 하는 한국사람을 안다면 곧바로 휴대폰으로 불러 외국인과 통화하게 하여 일을 순조롭게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편리할까. 중앙일보측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하다는 생각이다.

「BBB 시민운동」은 오는 4월9일부터 7월말까지 약 4개월 동안 펼쳐진다고 한다. 월드컵 축구대회 때 한국을 방문하는 손님이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언제 어디서든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휴대폰을 걸면 즉시 통역을 해줌으로써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 이 운동의 취지라는 게 신문사측의 설명이다.

BBB는 Before Babel Brigade의 약자로 우선 Before Babel은 바벨 전(前), 즉 바벨탑 이전 시대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 이후 인류는 하느님을 불신하며 바벨탑을 세웠는데 이를 괘씸하게 여긴 하느님은 탑을 헐며 인간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시켜 멀리 흩어지게 했다.

그래서 그 지명을 바벨(Babel) 또는 바빌론(Babylon)이라고 불렀으며, 그 뜻은 "그가 (언어를)혼잡하게 하셨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Before Babel은 인류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됐던 바벨탑 이전시대라는 뜻이다. 브리게이드(Brigade)는 군대의 여단 혹은 단(團)의 뜻이므로 BBB는 언어의 불편이 없는 하나된 인류를 꿈꾸는 통역·문화 봉사단을 말한다. (이상 신문기사 인용)

신문사측은 통역봉사요원 7백명을 모집중인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휴대폰을 쓰고 있는 사람이 3천만명이나 되며,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은퇴한 교수나 지식인, 일반 시민들이 전국에 수십만명이나 될 것이므로 목표인원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휴대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자주 생기고 있다.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일이 하루 3끼 밥먹는 것 보다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휴대폰으로 온갖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휴대폰전성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잘못된 말은 아닐 듯 싶다.

휴대폰의 용도가 다양하다 보니 휴대폰의 「활동영역」은 끝간데를 모를 만큼 넓어지고 있다. 휴대폰이 전자파 때문에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휴대폰사용을 마다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지난 설 연휴 때는 휴대폰으로 전국 각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의 교통소통 상황을 알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던 것도 잘 아는 일이다.

이번에 중앙일보에서 펼치려고 하는 「BBB 시민운동」도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 준 선물이라고 하겠다. 신문사측의 말대로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통역망을 구축하는 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월드컵대회 기간 중 관광과 비즈니스를 위해 입국하는 외국사람은 30여개국에서 5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운동이 단순한 전화통역의 차원에서 벗어나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동시에 언어장벽으로 생기는 이 민족간의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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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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