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2월 2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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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그해오늘은] 제비꽃 필 무렵



1815년 오늘 '악마, 유배지 탈출'이라고 프랑스의 모니퇴르가 보도한다.

그 '악마'는 진짜였든 가짜였든 귀신처럼 둔갑은 잘했다. 그래서 '코르시카의 늑대'가 돼 칸에 상륙한다. 그 칸이 오늘날도 영화제로 왁자지껄한 것을 보면 원래 터가 세고 시끄러운 모양이다.

'늑대'는 그 뒤 '호랑이'나 '전제황제'로 둔갑하더니 '보나파르트'로 변해 북으로 진격한다.

마침내 '황제'로 파리의 튈르리궁에 '납시기'까지 20일 이상 줄곧 정체가 바뀌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한 상황에서 언론의 기회주의를 말해 주는 일화다. 정론을 내세울 용기도 없고 눈치도 없어 갈팡질팡한 것은 세계사의 구설수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폴레옹이 몰락한 당시 지배층의 전반적인 어리석음일 수도 있다.

나폴레옹을 지중해의, 그것도 토스카나에서 12㎞ 거리인 섬에 유배시킨 것부터 경솔한 짓이었다.

그러고서도 이들은 구시대의 권익을 되찾은 것만 기뻐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그 전해 3월 엘바섬으로 떠나면서 제비꽃이 피면 돌아 오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귓전으로 흘려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폴레옹이 좋아하던 이 꽃이 만개한 것은 4∼5월이기에 방심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 거인은 엘바섬에 있을 때도 세상을 움직이고 있었다.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도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뒤마의 거짓말 솜씨가 총동원된 이 소설은 현란하기 짝이 없으나 주인공인 당테스가 엘바섬의 나폴레옹을 탈출시키려 한다는 모함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무튼 나폴레옹은 탈출하지만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시인 안도현은 '제비꽃에 대하여'에서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고 했다.




- 세계일보 200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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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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