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2월 2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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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그해오늘은] '노인과 바둑'



5년전 오늘 서봉수(徐奉洙)가 제5회 진로배에서 마샤오춘(馬曉春)을 꺾음으로써 9연승을 달성한 것은 한국인만의 경사는 아니었다. 바둑인들만의 화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같은 인간 드라마일 수도 있는 것이다.

쿠바를 싫어하는 이도 낚싯대 한번 만져본 적이 없는 이도 노인과 한편이 돼 낚싯줄을 끌어당기고 상어떼와 싸워주는 드라마.

당시 44세의 서봉수가 '노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10대에 세계 타이틀을 따내는 바둑세계에서 그는 노인일 수도 있다.

그 자신 25년전에 18세의 나이로 50세의 '노인' 조남철에게서 첫 타이틀(명인)을 따내지 않았던가.

그래서 '10대 명인'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그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조훈현이라는 바둑천재와 힘겨운 씨름을 하면서 제1조연의 자리나 지켜야 했고 80년대 후반에는 천재소년 이창호가 나타나 그런 씨름판도 서지 않았다.

그래서 주군 없는 사무라이(浪人)처럼 헤매는 듯하던 서봉수가 93년 잉창치(應昌期)를 차지함으로써 바둑황제로 복귀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바탕의 회오리바람같은 것이었다. 진로배가 열릴 무렵에는 제1조연은커녕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과 함께 앉는 '4인방' 자리도 거북한 처지였다.

따라서 얼핏 '밀가루 부대로 누덕누덕 기워 승리를 모르는 기폭'을 달고 나선 '바다와 노인'의 주인공처럼 출전한 서봉수는 중국의 위빈을 시작으로 세계의 대어를 아홉 마리나 낚는다.

그는 상어떼의 습격도 당하지 않아 우승상금보다 많은 1200만원의 연승상금도 챙긴다.

그후 진로배는 IMF로 없어지고 서봉수는 그 뒤를 이은 농심배의 예선에서도 탈락한다. 그 '노인'도 지금 사자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 세계일보 200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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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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