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2월 2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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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 두목

   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미국 대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 한국의 대표이사, 사장, 회장 등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이 말이 갑자기 범람하며 사장 회장 등은 그 물살에 급히 밀려 나가고 있다. 너도나도 CEO다. 조직폭력배 두목이 CEO를 자처하고 나서도 전혀 놀랄 일이 못 될 지경이다.
   대통령 지망자들 간에 이 말의 소유권을 두고 한때 실랑이를 벌인 것도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 코미디 한 토막이라 하겠다. 어느 지망자가 자신은 앞으로 이 나라의 CEO를 지향하겠다고 하자 다른 경쟁자도 CEO 자질을 갖춘 대통령이 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를 두고 양측이 표절이니 뭐니 하면서 서로 비난한 것이다. 흔한 보통명사를 두고 '높으신 분들'까지 이렇게 삿대질하며 기득권을 주장, 국민들을 웃겨(?)주는 걸 보니 세상이 많이 좋아질 모양이다.
   이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의 CEO에서는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군림하는 사장 회장 보스와는 달리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고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시대와 구성원들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지도자란 뜻이 진하게 풍긴다. 그러나 나라살림에서부터 구멍가게 운영까지 체질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데 책임자 명칭만 바꾼다고 하루아침에 확 달라질 것인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책임자나 대표가 자행한 부패와 비리가 잇따르는 걸 보면 그런 기대는 아예 접어두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그로 인한 일반 국민의 피해는 얼마나 많은가. 조폭 두목이 그렇다면 으레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색이 시민과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기관과 조직의 책임자들이 그러니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두목(頭目)은 머리와 눈을 일컬으며 수족(手足) 즉 손과 발이 그 상대 말이 된다. 이것이 오늘날의 우두머리란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중국 원나라 때 군대 총수를 지칭하면서부터였다. 그러던 것이 차츰 변해 우리나라에서는 폭력배들의 우두머리나 쓰는 말로 정착되었다. 임걱정, 장길산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조폭 두목이었지만 일반 서민들은 도우면 도왔지 괴롭히거나 위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조폭 두목은 그렇다치고 CEO라고 자처하는 인사들까지 조폭보다 더욱 대형으로 서민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명실상부한 CEO 역할을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임걱정 장길산 같은 조폭 두목이 낫다는 생각을 하는 시민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 웹진 '인재제일' 1,2월호 (200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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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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