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2월 19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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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가계 빚 위험수위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금융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이 일반대출이나 신용카드. 할부금융 등 여러 형태로 금융기관에서 빌려 쓴 금융부채는 지난해 9월 말 현재 316조3,000억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말(211조2,000억원)에 비해 50% 가량 늘어났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가계부채는 올해 말 430조원을 넘어서고 내년 말에는 500조원 선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05년 말에는 673조원으로 늘어나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는 등 금융시장에 심각한 불안요인이 될 것이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씀씀이가 커진 탓이다. 또한 저금리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자 가계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개인의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및 할부금융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는 속담처럼 소비자들도 싼 이자의 유혹에 빠져 마구잡이로 가계 빚을 늘려왔다.
    금융부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채(私債)도 많아 금리가 다시 오르고 부동산 거품이 꺼진다면 개인파산 사태가 빚어질 우려가 있다.
    문제는 가계 빚의 성격이다. 미국의 경우 가계 빚 중 상환부담이 크지 않은 장기 주택금융이 81.5%를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17.3%에 불과하다. 1년 만기의 단기 빚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장기주택금융제도가 일반화 돼 있지 않은 데다 서민들이 내 집 장만과 전·월세비 마련을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서 가계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개인의 금융부채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금융자산÷금융부채의 비율도 작년 6월 말 2.4로 일본(3.7) 미국(4.2) 영국(4.3) 등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채무부담을 우려해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가 폭주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부모나 남편 등의 사망으로 재산을 상속받았으나 상속 재산은 적은데 이미 알려진 채무가 상속 재산을 넘거나 드러나지 않은 채무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기피하고 있어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무분별한 가계 빚의 증가가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오는지는 신용카드 신용불량자 실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작년 11월말 현재 신용카드 회원 4,754만명 가운데 신용불량자는 104만1,000명으로 은행연합회에 등록된 전체 신용불량자 279만4,000명중 37.2%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 7월 62만5000명에서 불과 4개월만에 66.5%나 늘어난 것이다. 신용카드 채권의 연체율은 지난해 9월 말 현재 8.6%로 은행대출에 비해 여섯 배를 웃돌고 있다.
    또한 신용카드사들로부터 소비자들이 현금서비스나 카드론 등을 통해 대출 받은 액수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출 금액이 늘어나면서 고율의 연체이자에 시달리는 고객이 늘면서 급기야 카드 빚을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신용카드 신용불량자가 이처럼 늘어나는 이유는 신용카드 발급 기준은 느슨한 반면 신용불량자 요건은 엄격한 탓이다, 금융기관 등이 소득여부는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카드 발급을 하다보니 신용불량자가 양산된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만 20세 미만 미성년자들에게는 신용카드를 발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신용불량 기준 연체 금액을 현재 5만원(3개월)에서 10만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20세 미만 신용카드 발급 억제 방침은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소득이 있거나 신용이 불량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거래해온 소비자들의 금융거래까지 제한한다는 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자칫 가계대출 부실화가 제2의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개인 파산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돈이 가계대출보다 설비투자 등 더욱 생산적인 곳으로 흐를 수 있도록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하겠다. 가계에 대한 부동산담보대출과 신용카드의 과당경쟁을 억제하고, 개인여신 평가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 일요서울 200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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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칼럼니스트
일요서울 편집인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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