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2월 18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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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그해오늘은] 루터의 수구초심(首丘初心)



1546년 오늘 루터가 고향인 작센안할트의 아이슬레벤에서 숨진 것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을 떠올리게 한다.

60년의 태풍같은 세월을 보낸 그가 어려서 떠난 고향을 찾았다가 병에 걸려 죽은 것이 왠지 여우가 고향쪽에 머리를 향하고 죽는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고향을 떠난 이래 루터도 세상도 너무 바뀐 듯해 더 그렇다. 광부의 때를 벗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던 아버지가 성공한 광산업자가 됐으나 루터의 변신은 더 잘 알려진 일이다.

아버지가 보낸 에르푸르트 법대를 그만두고 수도사가 된 것이 첫번째 변신이다. 아버지에 대한 이 작은 저항은 주목을 끌지 않았으나 곧 교황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면서 세상을 뒤집는다.

그가 아버지에게 저항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날 친구와 함께 걸어가다 낙뢰에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죽음이 두려워' 수도사가 되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했던 그는 목숨을 걸고 면죄부를 파는 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해 종교개혁을 일으킨다.

최근 들어 이 종교개혁이 루터의 우연이라기보다 역사의 필연이라는 말이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9년전에 태어난 루터의 시대는 로마 중심의 중세봉건사회가 저물고 세속적 국가주의가 힘을 얻던 시대였다.

강력한 군주들은 돈이 로마에 흘러가는 것도 막아 면죄부는 통일된 왕조가 없는 독일에서나 팔기가 쉬웠다.

독일에서도 교황편에 서서 면죄부를 팔기에 정신없는 칼5세가 있는가 하면 루터를 보호해 종교개혁의 선언서같은 '95개조 논제'를 쓰게 한 작센 선제후도 있었다.

루터가 아이슬레벤에 간 것도 고향을 찾아서가 아니라, 영주들의 불화를 무마하기 위해서였다.그러고 보면 종교개혁으로 고향도 세상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죽음이 두렵다던 루터가 편안히 임종을 맞은 모습이 다르다.


- 세계일보 200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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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梁平)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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