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2월 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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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홍수

   1972년 여름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무렵 워싱턴의 민주당의 본부인 워터게이트 빌딩에 도둑이 들었다. 처음 이 사건은 시시한 단순절도로 취급돼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고 공화당의 닉슨은 무난히 재선되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가 끈질긴 추적보도를 한 끝에 범인들은 전직 FBI와 CIA요원들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백악관 고위층의 지시로 민주당의 선거운동관련 서류를 훔쳐내고 도청장치를 설치하려했던 것이다. 그 결과 닉슨은 재임중 대통령직을 물러나야 했다.
    워터게이트가 단순한 건물 이름에서 권력형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의미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문을 뜻하는 단어 게이트(gate)로서는 기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또는 사건이라 해서 게이트는 관형어 역할밖에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스캔들의 의미까지 포함한 새로운 단어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의 엽색행각은 남자가 바지 지퍼를 함부로 열었기 때문이라는 의미에서 지퍼게이트라 불렀고 그 상대 여자의 이름을 붙여 모니카게이트라고도 했다. 요즘은 미국 최대 에너지업체로 지난 해 12월 파산한 엔론이 현 부시대통령 진영에 제공한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엔론게이트가 새로운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감기에 걸려야 한다는 한국. 그걸 실증이라도 하듯이 1976년 유신독재정권이 재미실업가 박동선씨를 통해 미 의회에서 불법로비를 하다가 물의를 일으키자 미국 등의 해외언론이 코리아게이트라며 비난했다. 이어 수서게이트, 분당게이트 등이 출몰하더니 최근에는 아예 게이트 풍년을 맞았다. 윤태식게이트, 이용호게이트, 진승현게이트, 정현준게이트 이른바 `4대 게이트'의 진상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나라 전체가 표류하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게이트 못지 않게 뜬 말이 있었다. 바버 카너블 하원의원이 닉슨과 대통령 비서실장인 할데만의 대화를 녹음한 테입을 공개하며 이것이 ‘스모킹 건’(smoking gun)이라고 했다. 범죄의 결정적 증거란 뜻으로 쓰여지는 속어다. 서부영화를 보면 방금 총을 쏜 사람의 총구에서 남은 연기가 나온다. 총질한 사람이 누구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주는 증거다. 스모킹 건은 여기에서 비롯된 낱말이다. 최근에는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테러에 관해 말하는 비데오 테잎을 보고 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것이 스모킹 건이라고 했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못 닮아 안달하는 한국이다. 이왕 그럴 바에는 이것도 철저히 닮아 우리의 4대 게이트를 속시원히 해결할 스모킹 건을 빨리 찾아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웹진 '인재제일' 1.2월호 (200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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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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