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2월 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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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급자가 봉인가

      직장인 건겅보험료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2002년 1월분 건강보험료’예비 고지서를 받아보니 지난해 12월에 비해 63%나 인상됐다. 보험료를 한꺼번에 두 배 가까이 올리다니 어처구니없다. 2000년 7월 직장조합 통합 당시 보험료율을 올리면서 취했던 한시적 경감조치가 올해부터 풀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더구나 올 3월부터 보건복지부 방침대로 건보료가 다시 9%가량 인상될 예정이어서 직장인들의 보험료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의료개혁은 교육개혁과 함께 국민을 실험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정부의 정책실패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이 뒤집어쓰고 있다. 의약분업과 보험재정통합을 하면 약제비가 줄어 국민 부담이 감소하고, 약품 오·남용이 줄어 국민건강이 증대되며, 보험재정의 건전화가 함께 이룩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국민의 불편과 부담만 안겨준 꼴이 돼버렸다.
      현 정권이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의약분업 1년6개월의 대차대조표는 한마디로 적자투성이다. 보건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2001년도 건강보험 단기 적자는 무려 2조7,498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적자 규모는 당초 예상보다 많이 개선됐다는 자화자찬도 곁들인 수치다.
      지난 한 해 동안 보험료는 26% 인상됐다. 지역건보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고는 2000년도 보다 70%나 증가한 2조6,363억원을 투입했다. 2000년도의 이월 적립금 9,189억원도 몽땅 써버렸다. 진료시 환자 본인 부담을 높이고 의료수가를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의료기관에 지불할 진료비가 없어 이자를 주고 금융기관에서 차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건보재정의 통합논의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2조원이 훨씬 넘는 적립금을 확보하고 있던 직장보험이 1년반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이는 의료 이용률이 비슷해진 상황에서 국고지원액 2조6,000억원을 지역 건보 적자를 메우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정책실패가 큰 요인이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운영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해 6월 옛 지역의보 직원의 퇴직금 중간 정산으로 수천억원을 미리 지급했는가 하면 새해 들어서도 고위직에 대한 직책수당을 평균 21%씩 인상했다. 국민부담은 안중에도 없다. 지난해 여야가 건강보험 재정통합을 1년6개월 늦추기로 정치적 합의를 한 것도 갈등과 혼란의 연장일 뿐, 결국 보험료 인상이라는 큰짐만 국민 몫으로 떨어졌다.
      안정적 수지균형은 보험제도의 핵심이다. 건강보험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치고 보험료 인상, 과다한 국고투입, 보험혜택 축소 등의 조치로도 모자라 돈을 빌려서 진료비를 감당하는 나라는 없다.
      막무가내로 밀어 부친 개혁과정에서 이해집단 사이에 편가르기가 만연되고 이념충돌까지 빚었다. 의료계와 약계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이를 달래느라 의보수가를 4차례에 걸쳐 34.5%나 올려주었다. 그로 인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은 매월 4000억원 이상씩 늘어 국민이 건강보험 빚쟁이가 됐다.
      뿐만 아니라 의약분업으로 개인 병·의원과 일부 약국이 호황을 누리면서 우수 의과대학 졸업자들이 수익성 높은 성형외과나 안과 같은 분야로만 몰리는 기형적인 인력 수급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전통적으로 약에 크게 의존하는 의료문화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의약분업을 시행하여 이런 부작용이 줄줄이 나타나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을 앞장서서 지지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02년 시민운동 선언문'을 통해 '의약분업을 지지해 영향을 끼친 데 대해 반성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이와 함께 사회 원로와 제3자 등으로 의약분업 평가위원회를 구성하여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자는 경실련의 제안은 귀기울여 볼만하다.
      어떤 질병도 정확한 진단이 전제돼야 제대로 치유할 수 있다. 실패가 명백히 입증된 이상 의료정책은 밑그림부터 새로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


- 일요서울 200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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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칼럼니스트
일요서울 편집인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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