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1월 3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82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무료구독신청 및 해지 | http://columnist.org |
개인정보침해 1등국가 대한민국


길을 가다보면 신용카드 모집인으로부터 회원으로 가입하라는 권유를 자주 받게 된다. 번화가 같은 곳에서는 한 발짝 떼기가 바쁘게 「카드아줌마」들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가입을 종용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어찌나 적극적인지 이들에게 가까이 가기가 망설여질 지경이다.

신용카드라고 하면 이름 그대로 신용이 확실한 사람에게만 가입이 허용돼야 하는데 모집인들이 아무나 붙잡고 가입하라고 조르는 것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회원 가운데는 신용카드를 지나치게 많이 쓴 나머지 엄청난 돈을 연체를 하게 돼 결국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하지 않은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현재 신용카드불량자는 전체 회원 4천7백54만명 가운데 1백4만1천명(2.2%). 특히 그 동안 감독당국이 미성년자에 대한 신용카드 발급을 자제토록 카드사에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20세 미만의 신용카드 회원은 지난해 7월 19만3천명에서 11월에는 32만4천명(67.8%)으로 늘어났으며, 10대 불량자도 4개월 사이에 6천1백94명에서 7천4백56명(20.4%)으로 증가했다.

청소년들이 벌써부터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이 성인이 돼서 경제활동을 하려면 적지 않은 제약을 받게 될 텐데…. 아마도 길거리 모집인들의 권유에 의해서 가입했다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는 청소년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입자가 과연 신용카드를 가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가도 문제이지만, 신용카드 모집인들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대부분 정규직원이 아니라 임시직이거나 카드신청업무를 대행해주는 단순모집인이다. 그렇다면 그들 자체의 신원은 확실한지 의문을 갖게 된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남의 신상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군대에서 일정 자격을 갖춘 사람이 비밀취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그래서 규정을 강화하여 단순모집인은 가입권유만 하고 실무처리는 정규직원이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카드모집인의 신원에 대한 의구심은 의구심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일이 있었다. 지난 달 초 길거리에서 모집한 신용카드 고객 14명의 개인정보를 빼내 1억4천여만원을 가로챈 카드모집인 등 2명이 경찰에 적발돼 한 사람은 구속되고 또 한사람은 불구속 입건된 것이다.

이들은 고객들이 작성한 신용카드회원 신청서를 따로 복사해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유효기간 등을 이용하여 실물카드가 필요 없는 인터넷 전자상거래, 인터넷 카드할인, 메일뱅킹 등을 통해 1억원이 넘는 거액을 가로챘다. 피해자들은 "비밀번호 분실은 본인책임"이라는 것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신용카드사에 수백만원씩의 카드대금을 물었으며, 대금납입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신용불량자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고 하니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니다.

「길거리 신용카드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개인정보유출이 얼마나 예사롭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스팸메일도 개인정보의 유출과 관련이 있다. 스팸메일발송업자들은 남의 e메일주소를 불법적으로 수집하거나 사들여 무차별적으로 메일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산하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지난 한해동안 접수된 신고건수가 모두 11만4천3백41건으로 전년도에 비해 무려 7.2배나 증가했다. 이 가운데 타인의 개인정보를 훼손·침해·도용한 경우가 4천8백여건(34%)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한 신문은 이 같은 사실을 1면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인터넷이용률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개인정보 침해분야에서도 세계최고일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신문은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정보화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을 막는 주범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일이 크게 늘어나자 당국으로서도 대책마련에 힘쓰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7월 관련법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규정을 대폭 강화했으며, 12월에는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관련법을 고쳐 스팸메일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물론 여행사·호텔·항공사·학원·교습소 등 오프라인 사업자들도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이행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개인정보보호지침」을 고시했다. 이 지침은 이들 사업자가 자사 회원의 개인정보를 타 사업자에게 넘겨줄 경우 이를 회원에게 사전에 고지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업자가 이 같은 정보를 특정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제 3자에게 제공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의 의무를 부여했다.

인터넷사이트를 이용하려면 자신의 신상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만 회원이나 고객이 돼 가상공간에서 e메일주고받기, 전자상거래, 홈쇼핑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쉽사리 유출된다면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국가와 사회, 개인의 정보화는 제자리걸음을 걷게 될 우려가 높아진다.

불행히도 현재로서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 것인지 여부는 나중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개인정보의 보호 및 유출방지를 위해 함께 힘쓰는 길 밖에 없다. 당국에서는 관련 법령이나 제도를 꾸준히 보완해 나가고, 시민단체 등에서는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임으로써 시민의식을 높여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최고의 인터넷이용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개인정보침해 1등국가」라는 오명을 지닌채 정보화후진국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닌가.

--------------
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2.01.30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