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1월 28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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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메리카나

     아프가니스탄과 빈 라덴의 알카이다에 대한 9.11테러 응징전쟁을 보면서 지구촌 사람들은 또 한번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했다. 즉 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평화가 과연 무엇인가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강력한 무력으로 지중해 연안을 지배한 고대 로마는 그들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세력을 철저히 응징하며 자기 질서 속의 평화를 강요했다.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다. 그 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델란드 등으로 이어져 온 세계의 패권은 18세기말 영국으로 옮겨져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 시대를 가져왔고 1931년 국제통화결제 수단이었던 파운드화 영역이 축소되면서 그 막을 내렸다. 이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에 힘입은 팍스 루소-아메리카나(Pax Russo-Americana) 가 소련붕괴로 무너지자 미국의 독무대가 되었다.
     90년대 들어 걸프전, 코소보 및 르완다 사태 등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한 미국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제 자본주의체제를 재편, 강화하는 한편 전 세계의 자본, 상품,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대규모 메카니즘을 구축했다. 이로써 미국은 사실상 지구촌의 입법, 사법, 행정권을 모두 장악한 세계 유일의 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로마제국보다 훨씬 강한 이른바 인류역사상 최대제국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다.
     속된 말로 지구촌의 '큰 형님'이 된 것이다. 팍스는 라틴어로 평화를 뜻한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큰 형님인 미국이 뭐라고 하면 꼼짝 말고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는 평화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가상국에서는 전쟁 담당부서를 평화부라고 한다. 그 역설과 오늘의 팍스 아메리카나가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를 견제할 세력으로는 중국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아직은 막연한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지구촌의 패권이 어디로 가든 약소국인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들보다 더 중국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려던 지도층 인사들이 많았던 조선조를 비롯한 과거 역사의 짐이 아직도 버거운데 사고방식은 물론 외모, 언어까지 더욱 미국인답게 되려고 몸부림치는 오늘의 우리 꼬락서니가 너무 처량하기 때문이다. '큰 형님'의 논리를 마치 자기 생각인양 앞장서서 강력히 주장하는 인사들이 설치는 현상도 이미 치유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심할 뿐이다.


-웹진 '인재제일' 1,2월호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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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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