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셈인지 우체국은 다른 관공서나 은행에 비해 조그맣고 비좁다. 그 앞에는 예나 지금이나 빨간 색의 우체통(지금은 우편함이라고 부르지만)이 세워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구조가 얼핏 보기에 은행처럼 생겼지만 좁은 탓인지 다소 지저분하다. 직원들이 앉아 있는 창구 안쪽에는 크고 작은 소포와 편지더미 등 우편물이 널려 있다. 고객들이 사용하는 장소도 우표 붙이는 책상이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더욱 답답한 느낌을 준다. 고객을 위한 소파를 놓아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은행처럼 깨끗하지 못해서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다.
정보통신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일반 우체국 외에 개인이 당국의 허가를 받아 동네 한쪽에 설치해 놓은 우편취급소라는 곳도 있는데 이곳은 더욱 좁아서 우체국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데 한몫을 한다.
우체국이 처음부터 이렇게 좁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61년에 일어난 5·16쿠데타 이후 체신부장관을 지냈던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오늘날의 우체국 이미지를 크게 흐리게 한 이유라는 것이 정보통신부(옛 체신부) 사람들의 얘기다.
당시는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있던 시대라 특별한 전문지식이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처는 군 출신이 장관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체신부라는 곳도 우표를 발행하고 전화 놓아주는 곳 정도로 인식되던 부처여서 장관도 당연히(?) 군 출신이었다.
체신부의 후신인 지금의 정통부야말로 국가의 중추신경을 관장하는 부처로서 어느 부처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저 필요하니 존속시키는 부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체신행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군 출신의 장관이 한 일은 우체국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었다. "우체국에서는 우표만 팔면 됐지 사무실이 클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우체국 건물이나 사무실이 은행보다는 작았지만 그래도 큰 편이었다.
체신부는 장관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우체국 사무실 축소방침」에 따라 전국의 우체국 사무실 크기를 줄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었다. 그 장관은 제법 크다싶은 건물은 아예 팔도록 했다. 국가예산으로 움직이는 우체국이 너무 커서는 낭비가 된다는 것이었다. 우체국의 존립의미가 국민에게 서비스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깡그리 망각한데서 비롯된 발상이었다.
우체국이라는 곳이 편지만 부치는 데가 아니라 각종 소포를 다루기 때문에 일정한 넓이는 유지해야 하는데 사무실이 작아지다 보니 막상 고객들을 위한 면적은 지극히 비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장관은 체신부 소유의 건물 외에 토지 등 다른 부동산도 팔아치웠다. 그것 역시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재 대전에는 정보통신부의 연수원이 있는데 처음에는 상당히 큰 부지였다. 그때 일부를 팔아버리는 바람에 좁아졌지만 그래도 남아있던 땅에 연수원을 지어 잘 활용하고 있다. 정통부사람들은 이것마저 팔아 없앴더라면 변변한 연수원 하나 없는 부처가 될 뻔했다며 안도하고 있을 정도이다.
지금의 정통부사람들 가운데 이 같은 사실(史實)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80년대 중반 기자생활을 하던 필자가 체신부에 출입할 때만 해도 간부급 직원들은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체국이 좁다는 말만 나오면 당시의 장관이름을 들먹이면서 욕까지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부동산투기 붐이 일었던 80년대는 건물이든 땅이든 큰 것만 가지고 있으면 부자가 되던 시절이었던 만큼 60년대 체신부장관을 지냈던 군 출신 한 사람 때문에 많은 부동산을 팔거나 축소했던 정부로서도 재산상의 손해를 상당히 보았다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당시 전국의 우체국 수와 토지의 크기를 필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체신부 소유의 부동산을 헐값에 팔지 않고 그대로 지키고 있었더라면 부자부처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우체국은 모습이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직원들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도 이제는 손님들에게 내어주고 자신들은 좁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봉사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새로 세워지는 우체국 사무실도 상당히 넓어지고 있어 외형상으로 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겉모습만 가지고 우체국이 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 변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편물 배달만을 떠올리게 했던 우체국이 이미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데 은행처럼 많은 사람들이 창구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여유공간을 이용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컴퓨터교육을 실시하는 곳도 여러 곳 있으며, 벤처기업인의 양성을 위해 창업지원센터를 운용하고 있는 우체국도 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도 여러 대 갖춰놓는 것은 기본이다. 사회의 정보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우체국의 역할을 더욱 커지리라고 생각된다.
우표 파는 곳으로만 인식돼왔던 우체국이 21세기를 맞아 새시대에 걸맞게 종합정보의 메카로 거듭나면서 국민정보화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음은 대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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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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