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1월 2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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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하기'의 함정

인류의 역사는 속도 추구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빠르게, 빠르게, 더 빠르게"를 외치며 달려왔다. 디지털 시대, 인터넷 시대, 정보화 시대가 되면서 속도 추구는 더욱 숨가쁠 지경 이 되었다. 빌 게이츠라는 재간꾼이 '생각의 속도'라는 책을 썼다. 생각도 빨랴야 하고 변화도 빨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모두 휩싸여 있다. 뭐든지 달라지고 새로워져야만 한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반역자다. 전부터 있어 온 것에도 새 이름을 붙여야 한다. 그 결과는 언어의 남용이고 혼란이다.

요즘 사장님은 저마다 CEO라고 해야 격이 올라가는가 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겠다는 사람들도 자신을 경영감각 있는 CEO라고 일컫는다. 또 요즘 사업치고 벤처사업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드물다. 사업이란 예나 이제나 본디 모험성이 있는 것 아닌가. 장보고나 임상옥이나 콜룸부스가 다 벤처사업가 아니던가.

아파트 이름들도 꼬부랑 서양말로 붙이지 않으면 들어가 살 사람이 없는가 보다. 그런데 유럽에 있는 큰 건물 이름이기는 하지만 그 뜻이 '범신전'(汎神殿)인 서양말을 끌어와 아파트 이름으로 쓰는 것은 좀 심하다. 첫째, 그 건물은 그 국민의 훌륭한 조상들 유해를 모신 곳이므로 그 이름을 따오는 것은 그 나라에 실례가 된다. 둘째, 산 사람이 사는 주택에 죽은 사람 모시는 건물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새롭게 하기' 또는 '색다르게 하기'가 고작 '서양 것 흉내내기'로 빠지는 것이 문제다. 겉멋부리다가 꼴사납게 구렁에 떨어질 수 있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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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영산대 매스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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