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2002년 1월 1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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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까지 있는 시계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는 12까지 있는 것이 보통이다. 24까지 있어 하루 24시간을 그대로 나타내는 시계도 있지만 대부분 12에서 끝난다. 그렇다고 오전 10시와 오후 10시를 혼동하는 사람은 없다. 어려서부터 시계 보는 법과 그 계산방법 습득과정에서 시계의 열두 숫자배열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서 외국계 광고회사 사장이 우리들에게 손목시계를 한 개씩 주었다. 홍콩 본사에서 창립기념일 선물로 시계를 준비했는데 누군가가 장난기를 발동해 12 아닌 13까지 있는 것을 일부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침 한국 지사에도 몇 개 왔다면서 우리더러 재미 삼아 사용해 보라고 나눠주었다.

시계 숫자는 꼭 12까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쳐보라는 것이었다. 이를 사용하려면 숫자 사이가 1시간 또는 5분이라는 개념을 지우고 바늘의 위치에 더 비중을 두어 시간을 파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고정관념 때문에 자신을 구태의연한 틀 속에 가두거나 세상 보는 눈을 스스로 좁히는 폐습에서 벗어나 보라는 이 시계의 의도가 마음에 들고 그 발상이 재미있어 그 날부터 아껴 차고 다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과는 미미하다. 습관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이 우리 같은 범인들로서는 쉽지 않은 탓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관념들을 과감히 깨뜨리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이나 상대성이론을 확립한 아인슈타인이야 인류 역사상 몇 안 되는 천재이니까 감히 쳐다볼 수도 없지만 왜 사소한 것들마저도 달리 생각해보는 능력이 나는 이리 모자랄까. 어쩌다가 무심히 시계를 들여다 볼 때는 기껏해야 이런 식의 한탄만 하기 일쑤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말이다. 즉 상대방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 것이다. 이것도 시계를 일정한 틀 속에서 보지 않고 생각을 바꾸어 보는 식의 이른바 고정관념 파괴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 이상으로 알지 못한다'는 말처럼 대부분 그 동안 배우고 듣고 겪어서 아는 것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알량한 것이 고착되면 상투적이고 진부한 편견, 맹목적 고집, 폐쇄된 선입견이 되어 자신을 구속하고 만다. 우리가 남과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의 대부분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나 아닌 남을 우리는 얼마나 진정으로 아는가. 곰곰 생각해보면 누구를 안다고 자신했던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빈약함을 알 것이다. 그걸 바탕으로 좋고 싫은 감정을 드러내며 싸우고 비난하며 실망한다. 이 시계는 그런 옹졸한 테두리를 벗어나 영혼을 보다 자유롭게 해보라는 권유였다.

그러나 말이 쉽지 상대방 처지에서 자기를 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남의 관점에서 자기를 보는 즉 자신의 객관화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디오와 녹음기를 통해 남의 입장에서 자신의 모습과 음성을 대할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의 가슴과 생각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다. 완벽한 입장전환은 불가능해도 생각이라는 도구가 있기 때문에 시도는 해 볼 수 있다.

우선 자기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의 처지에서 자기를 보도록 한다고 해보자. 이는 시도 자체만으로도 몹시 괴롭고 불쾌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참고 계속해보면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도 분명한 자신의 결점이 드러난다. 그 다음은 긴 설명 없어도 문제가 어떻게 풀릴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수백 번 시도해서 한번 성공할까말까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자신의 객관화에 힘쓰는 동안 항상 고달프기만 한 인생의 행보는 조금쯤 수월해 질 것이고, 지고 가는 짐의 무게 또한 꽤 가벼워 질 것이다. 아울러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넉넉해지고 원활해질 여지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영혼을 보다 자유롭게 하며, 지뢰밭보다 더 험한 삶의 길을 좀더 안전하게 안내하는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 물을 거울삼으면 자신의 생김새를 볼 수 있지만 남을 거울삼으면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은 바로 이를 일컫는 금언이라 하겠다.

그러나 세상에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 알면서도 실천이 어려워 늘 그 모양 그 꼴인 법이다. 해가 바뀌거나 계절이 달라지는 세월의 매듭은 그래도 한번 더 시도해 보라는 독촉이요 경고다. 신년을 맞아 학사 경고장을 받은 학생처럼 시계를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결과는 또 그렇고 그럴 테지만 노력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새마을운동' 93호 200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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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