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받은 편지함에 읽지 않은 메일이 120통 있습니다." 이 말은 오늘(27일) 아침 8시 필자가 주로 쓰고 있는 어느 포털사이트의 웹데스크 바탕화면에 올라 있는 내용이다. e메일 박스에 도착해 있는 e메일 건수가 무려 1백20건이라는 뜻이다. 이 것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대부분 쓰레기나 다름없는 스팸메일들이다.
읽지 않은 e메일 건수가 이렇게 많은 것은 최근 들어 하도 많은 스팸메일이 날아오기에 과연 얼마나 되는가 싶어 며칠 전부터 일부러 지우지 않고 그냥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1주일 동안 필자에게 배달된 스팸메일 건수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6일 14건, 25일 8건, 24일 18건, 23일 10건, 22일 15건, 21일 19건 20일 15건으로 일주일 사이에 106건이나 된다. 하루에 약 15건이 되는 셈이다.
내용은 각종 상품홍보, 쇼핑몰이나 학원광고, 홈페이지제작, 섹스관련 성인사이트소개 등 다양하다. 특히 성인사이트광고와 같은 불량메일은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런 스팸메일들을 지우는 일이 하루 일과처럼 됐지만 그때마다 짜증이 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스팸메일은 최근 들어 더욱 늘어났다. 어찌나 많은지 「스팸메일홍수」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2천5백만 네티즌들은 필자처럼 매일같이 「스팸메일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몇달 전만 해도 하루에 기껏해야 5∼6건에 지나지 않던 것이 10건, 20건에 이르고 있으니 네티즌들의 속을 끓게 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친구나 아는 사람들과 e메일을 주고받는 일이란 종이편지를 교환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어서 여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처음에는 광고성 메일조차도 그저 좋은 마음으로 훑어보았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자칫하다가는 바이러스에 감염될 우려까지 있으니 낯선 곳에서 날아든 e메일을 쳐다보는 기분이란 불쾌하다 못해 두려워지기도 한다.
스팸메일이 지금처럼 극성을 부리지 않았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고 e메일을 체크하는 기분이 썩 괜찮았었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스팸메일이 몇 건이나 되는지를 먼저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팸메일이 적을 때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또 웬일인지….
스팸메일이라고 생각되면 「수신거부」를 하거나 그냥 지워버리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내게 꼭 필요한 e메일을 삭제하는 수가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생각 없이 지웠다가 다시 찾아왔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것은 분명히 수신거부를 했는데도 사람이름과 제목만 바꿔 전송돼오기도 해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그렇듯이 필자에게도 5∼6개의 e메일주소가 있다. 주로 쓰는 것은 3개로 한가지는 특별히 개인적인 용도로 쓰고 다른 한가지는 글쓰기(칼럼)에, 나머지 것은 공식적인 일에 쓰고 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쓰는 e메일주소로 유달리 스팸메일이 많이 날아오는 바람에 며칠 전에 「대표주소」를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다. 당분간은 다소 불편하겠지만 스팸메일의 공포에서 해방되려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스팸메일이 난무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e메일주소 수집프로그램을 통해 네티즌들의 e메일주소를 쉽사리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에게 배달된 스팸메일 가운데는 "e메일 추출기와 발송기를 판다"는 내용이 있어 무척 놀란 적이 있다. 가격은 20만∼50만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니 온라인으로 상품을 팔려는 사람은 이 것을 사서 e메일주소를 확보한 뒤 스팸메일을 발송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포털사이트인 Daum의 경우 하루에 3천만건 이상의 e메일이 수신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0% 이상이 스팸메일로 추산되고 있다. 스팸메일로 신고되는 것만도 올 초에 하루 1백여건에서 12월 들어서는 1천건에 이르고 있다고 하니 네티즌들이 입는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에는 수신자가 거부하는데도 스팸메일을 보내면 5백만원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도록 돼있다. 그러나 불법복제 프로그램이나 음란물 광고등의 불법메일은 대부분 익명으로 PC방 등에서 전송하는 것이어서 발송인을 찾기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또 지난 7월에는 「광고메일」이라는 표시를 하고 「수신거부」코너를 표기하도록 규정을 신설했으나 처벌조항은 그대로 두었다. 따라서 광고메일과 수신거부 표기를 하면 적법한 것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스팸메일을 크게 늘리는 역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당국은 최근「광고메일」「수신거부」를 표기하지 않은 메일에 대해서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광고메일을 거부대상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광고메일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저렴한 마케팅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도 그만큼 싼값에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차단만 해서는 제도적·경제적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특별한 기술이 개발되지 않고서는 스팸메일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네티즌들은 어쩔 수 없이 스팸메일과의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광고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발송을 절제하는 태도가 요구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로서는 관련법 위반자에 대한 벌칙을 강화하는 한편 e메일주소거래 등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등 사후조치를 매우 엄격하게 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하겠다. 이와 함께 네티즌 스스로가 웹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e메일주소를 갖게 되면 바로 스팸메일 발송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
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12.2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