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브스모킹'
담배 값에 부과되는 세금과는 별도로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올린다는 소식에 골초들이 화가 났다. 흡연자들이 봉인가. 왜 부족한 정부 재원을 충당하는 데 이용하려드는가. 올 초에도 이미 담배 한 갑당 100원∼200원의 소비세와 교육세를 올리지 않았는가.
그렇게 국민 건강을 걱정한다면 금연 프로그램을 정부차원에서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가뜩이나 짜증스러운 일들이 많은 세상, 시름을 덜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에게 금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덤터기를 씌우려고 하는가.
한술 더 떠서 내년부터는 1천석 이상 실외경기장 관람석에서는 흡연을 완전 금지시키겠다고 하니 골초들은 편한 마음으로 내년 월드컵 관전도 제대로 못할 판이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음식점과 PC방, 만화방 등은 금연공간을 구분해야 한다니 흡연자뿐 아니라 업주들도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정부중앙청사, 보육시설, 유치원, 초중고교, 의료기관 등은 절대금연 건물로 지정하고 위반자에게는 최고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니 흡연자들을 범죄인 취급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공중파 방송에서는 연간 6조원 규모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담배연기로 날려보내는 '골초의 나라'라고 흡연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담배에 대한 폐해를 모르는바 아니다. 비흡연자들의 간접피해가 많고 청소년 흡연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금연대책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정부의 금연종합대책은 흡연자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국가조세의 일등 공신이면서도 죄인처럼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했던 골초들이 인터넷 공간에 몰리고 있다. 흡연자들의 권리 찾기 사이트인 '아이러브스모킹(www.ilovesmoking.co.kr)'이 그곳이다. 흡연을 조장하는 열린 공간이 아니라 애연가들의 권리와 책임을 함께 지려는 토론장이다. 골초에 담배 피울 공간이 마땅치 않아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필자도 회원으로 가입했다.
쌈지월드, 서핑토바고 꼴초클리닉, 꽁초매거진, 꼴초들의 토크박스, 매니아 클럽 등의 코너가 있다. 쌈지월드는 담배의 전래라든가 역사와 담배와의 관계 등을 알려주고 서핑토바고는 국산브랜드, 외국브랜드, 담배관련 상품이 전시돼 있다. 꼴초클리닉을 통해서 흡연가용 건강지침서를 볼 수도 있다. 꽁초매거진에서는 유명인사들의 담배에 얽힌 사례와 사진을 전시해 놓아 눈길을 끈다.
'아이러브스모킹'을 운영하는 성형주(31) 대표는 '클린 월드컵'을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흡연자들이 경기장 관람석에서 흡연을 삼가는 대신 흡연 장소를 지정하여 예절바르게 피우고 깨끗하게 버리는 자율적인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토크박스에서는 담뱃값 인상이라든가, 공공기관의 절대 금연 보도 등 골초들에게 민감한 사안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whynot라는 아이디를 가진 회원은 담뱃세 인상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애연가가 시다바리가?'라는 글에서 "정책실패로 인한 건강보험 파탄의 짐을 흡연자들이 떠 안는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굳이 흡연자 호주머니에서 각출해야겠다면, 최소한 그에 걸맞는 논리와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민정이라는 회원은 "인텔리젼트 빌딩에 설치되는 환기시설을 보다 강화하고 담배연기가 확실히 배기되도록 시공한 뒤 흡연 구간을 정하고 흡연 및 비흡연의 공간을 확실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밖에도 "정치 후진국에서 금연한다고 선진국 되느냐" "차라리 세금 거둬 비흡연자에게 주면 '금연강국'을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는 비아냥과 함께 노골적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어떤 회원은 "차라리 담배를 마약으로 지정하라"는 역설적인 주장까지 펴고 있다. 하긴 1996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담배를 마약으로 선언한 뒤 금연캠페인을 펼쳐 성공시킨 선례도 있으니까.
흡연자들은 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마저 박탈당하는 느낌이다. 애연가들의 흡연권도 비흡연자들의 혐연권만큼이나 중요하다. 흡연자들도 쾌적한 흡연공간에서 담배를 마음놓고 피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절대금연건물내에도 흡연구역을 설치하는 등 최소한의 성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흡연여부는 이데올로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흑백논리를 펴듯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요서울신문 2001.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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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칼럼니스트
일요서울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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