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도와 시민
인터넷이 이용되기 시작할 때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리라고들 기대했다. 양방향
매체인데다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즉각적인 반응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어서다. 이로써
직접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다. 간접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를
행하기 어려운 여건 때문에 하는 것이지, 민주주의의 본령은 직접 민주주의다. 국가 규모가
커지고 인구가 많아지면서 간접 민주주의 방식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널리 활용되면서 이것에 걸었던 기대는 꽤나 허물어졌다. 양방향성,
즉각성에다 익명성과 때로는 집단성까지 포개지면서 사이버 세계는 어지러워진다. 물론
익명성에는 자유로운 발언을 돕는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나약하다. 뒤탈이 두려워
발언을 꺼리는 때가 많다. 익명성은 그런 불안을 없앤다. 그러나, 익명이란 방패 뒤에서
인간은 사악해지기 쉽다. 또, 무리를 지어 분위기에 휩싸이면 비이성적이기 쉽다.
자신의 뜻과 다르다 하여 게시판이나 방명록에 몰려가 야비하고 험악한 말들을 써갈겨대는
것, 동시에 떼로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이메일을 집중적으로 보내 서버를 마비시키는
것은 폭도의 난동과 다를 바 없다. 폭언, 비방, 떼지어 몰려가기 같은, 자제 없는 표현의
자유란 타인에게는 폭력이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커다란 적이다. 대중이 폭도가 되는 것은
정권이 폭력을 자행하는 것 못지않게 민주주의에 해롭다. 인터넷 시대에 내가 폭도의 한 사람이
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 '네티즌'은 '인터넷'과 시민이라는 뜻의 '시티즌'을
아우른 말이고, 시민이란 민주국가의 책임감 있는 주인을 이르는 말이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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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영산대 매스컴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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