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인구가 2천5백만명을 넘어선 지금 네티즌들에게는 e메일이 그 편리성 때문에 무엇보다도 소중한 통신수단이 되고 있다. e메일의 사용이 보편화되다 보니 좋은 일도 많이 생기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매사가 그렇듯이 e메일에도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어두운 면도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일반 우편보다 훨씬 빠르고 값싸게 메일(편지)를 보낼 수 있는 것이 e메일의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웹사이트 게시판 같은 곳에서는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는다고 사정없이 비방과 비난을 퍼부어 대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하겠다. 네티즌으로서는 e메일에 아무리 부정적인 면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매우 중요한 통신수단인 이상 이를 멀리하기보다는 더욱더 가까이 할 수밖에 없다.
네티즌들은 e메일 주고받기가 실제의 만남보다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면 핸드폰을 갖고 다니면서도 직접 통화를 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두가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우선 재미가 있고, 요금도 아주 싸다는 것이다. 핸드폰을 통화를 하면 보통 10초에 20원 안팎이지만 문자메시지는 1회에 30원 정도하기 때문에 용돈이 부족한 네티즌들이 문자메시지를 즐겨 이용하는 것도 이해가 갈 만하다.
어쨌든 e메일이 사랑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값싸고 편리한데다 상대방이 e메일주소를 갖고 있다면 누구에게든 이쪽의 의사를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e메일이야말로 전화나 편지로 할 수 없는 말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단이다. 전화로는 선뜻 내뱉을 수 없는 내용이라도 이상하게도 e메일로는 쉽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네티즌들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e메일의 매력은 이처럼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필자에게는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인기배우 리처드 기어가 김대중대통령에게 보냈던 e메일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내용은 당시 정부당국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방한(訪韓)과 관련한 것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으로 알려진 비폭력과 평화의 인물인 만큼 오랜 전통과 불교유산을 지닌 한국정부가 이 위대한 스승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한국정부가 방한비자를 내주리라고 확신하나 그렇지 않을 경우 전세계에 슬픈 소식이며 아시아에서 한국의 권위가 크게 손상될 것이다." 리처드 기어가 당시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던 e메일의 내용이다.
이 같은 사실이 신문에 보도돼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실현될지 여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지만 안타깝게도 리처드 기어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때 필자는 칼럼에서 "e메일이 없었다면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는 글을 아무 거리낌없이 공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전할 수 있는 홈페이지가 있기에 e메일을 통해 이 같은 탄원을 쉽게 하게 되고, 또 이런 내용을 누구나 읽어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자우편이 지니는 매력이자 위력이 아닐 수 없다"고 썼다.
빗나간 얘기 같지만 지금 2002년 월드컵 축구와 관련하여 한국의 보신탕문화가 외국언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지난달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에게 「개고기 금지 요구」서한을 보낸 이후 한국의 개고기 식용문화에 대한 논란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뉴욕의 워너 브러더스 방송은 뉴욕의 한인들이 개고기를 먹고 있다는 폭로 방송을 했고 프랑스 FT2방송은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풍자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도 한국의 개 도살과 식육 현장을 다룬 기사를 게재하며 비판했다. 앞으로도 다른 주요 언론들이 한국의 개고기 식용 습관과 관련한 토론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보통문제」는 아닌 모양이다.
프랑스 영화배우 출신으로 동물보호재단을 이끌고 있는 브리지트 바르도(67세)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동물애호가인 그녀는 지난 3일 한국의 보신탕 문화에 관해 국내 라디오프로와 인터뷰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인"이라는 논리를 계속 펴며 우리 음식문화를 거듭 비판했다. 인터뷰 도중 진행자가 "프랑스, 독일, 미국인도 한국에 와서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아느냐"고 질문하자 "속지 않는 이상 먹지 않는다. 거짓말을 일삼는 한국인과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브리지트 바르도에 불만을 품고 e메일을 통해 공격(?)을 퍼부었고 이를 참다 못한 그녀는 4일 파리주재 한국특파원들에게 "1천여건의 협박성 e메일을 받았다"면서 「한국 국민에 대한 호소」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서한에서 "모욕과 협박성 e메일들의 호전성에 충격을 받았다. 야만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보호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나는 한국 개들의 슬픈 운명을 그냥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라며 계속적으로 투쟁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녀의 말대로 모욕적이고 협박적인 e메일을 받고 열을 크게 받았음에 틀림없다.
e메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희한한 것이어서 입으로는 다 할 수 없는 욕설이나 비난성 발언도 e메일로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내뱉을 수 있게 해주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보낸 e메일의 많은 내용들이 얼마나 공격적이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이는 e메일이 갖는 매력이 도를 넘친 경우라고 하겠다.
e메일은 남에게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전하는 「도구」가 되면서 잘 쓰면 이롭고 잘못 쓰면 해로운 「칼」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e메일의 기능을 보면 마치 양날을 가진 칼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난해 영화배우 리처드기어가 청와대에 홈페이지에 올린 e메일과 최근에 우리나라 네티즌이 브리지트 바르도에게 보낸 e메일은 같은 의사표시의 수단일지라도 용도가 다르게 쓰여졌다는 점에서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
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12.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