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장식용 이메일 주소
전자출판 학술 모임에서 만난 교수 한 분의 명함을 받고 보니 이메일 주소가
없었다. 이메일을 써 본 적도 없고 쓸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전자출판에
관심이 많으면서 전자우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이메일 주소를 명함에
박아 놓고 쓰지 않는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낫다.
한 벤처 업체의 임원이 된 분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 분은 회사에서 박아준
명함에 이메일 주소가 있지만 편지함을 열어 볼 줄 몰라 가끔 비서가 해 준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얼마 안가 이 분은 그 회사에서 나왔다.
또 다른 벤처 업체 하나는 퍽 탄탄하게 기반을 잡은 회사다. 중요한 업무 때문에
관련 부서 간부에게 명함의 이메일 주소로 편지를 보냈더니 종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사장에게 바로 이메일을 보내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사장이 훌륭하고
토대가 충실하기는 하지만, 이메일 처리에 늑장부리는 부하 간부가 있는 한 장래 발전이
더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관련 국제 회의에 자주 참석하는 저명한 교수에게 신문에 실을 원고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이메일로 보내 오기로 한 원고는 마감 이튿날에야 도착해 쓰지
못하고 말았다. 그 뒤 교수에게 물어 보니, 조교더러 보내라고 했는데 그 조교가 서툴러
그리 되었다고 미안해했다.
명함에 이메일 주소를 그저 장식용으로 써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직장의
성격으로 보거나 맡은 일로 보거나 이메일을 누구보다도 잘 이용할 듯한 사람들 가운데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1.11.29
-----
박강문
칼럼니스트
영산대 매스컴학부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