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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종잡을 수 없게 되자 펀드매니저들이 점집을 기웃거리고 있다는 신문보도가 필자의 머리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국 테러사건이후 주가의 향방을 가늠하기 힘들게 되자 여의도 주변의 점집이나 철학관이 증시전문가들로 북적거린다는 기사는 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과학적 분석기법을 자랑하는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들이 점집을 찾는 사실을 두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느냐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소식을 듣고서는 적잖이 당혹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길래 잘 맞히기로 소문난 점집은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고, 점집을 찾기가 어색한 사람들은 전화로 묻기도 한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점쟁이들이 무슨 재주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주식시세를 미리 알아내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증시가 아니더라도 여의도 일대는 이미「젊은 도사」들이 인터넷점집을 점령했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컴퓨터로 대변되는 21세기 최첨단시대에 점쟁이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세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는지 점(占)에 대해 비교적 익숙해져 있는 50대 중반의 필자마저도 알 수가 없다.
요즘의 점집은 옛날과는 크게 다르다. 재래식 낡은 건물이 아니라 시내번화가의 빌딩에 「사주카페」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고 젊은 세대들을 맞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사주카페들이 여러 곳 들어서서 성업중이다.
내부장식은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놓음으로써 전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상호도 우리말 보다는 영어로 쓰는 곳이 많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점보는 집이 고리타분한 곳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점쟁이(역술인)만 50∼60명을 두고 전공별로 점을 쳐주는 매머드점집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결혼이나 궁합은 물론 사업, 주가, 부동산시세, 법정소송, 풍수지리 등으로 세분화하여 점을 보아준다. 심지어 국제정세도 점을 치고 있다. 물론 점쟁이들은 그 방면에 상당한 공부를 한 젊은 사람들이다.
점쟁이들의 학력도 자연히 높아져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자가 많아졌다. 학력이 낮으면 그만큼 신뢰도가 떨어져 손님을 끌 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이들은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점을 쳐주기도 하지만 e메일로 점괘를 봐주기도 한다. 이들이 점에 쓰는 도구는 쌀이나 동전이 아니라 컴퓨터이다. 컴퓨터를 잘 모르고 학력도 낮은 늙은 점쟁이들은 그래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점쟁이들의 고학력시대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더이상 「점쟁이」라고 낮춰 불러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좀 더 고상한 표현인 「역술인」으로 불러야 마땅한지도 모르겠다. 어떤 점쟁이들은 스스로 「예측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으로 기발한 표현이다.
점쟁이들의 학력이 높고 그들이 운영하는 사이버점집이나 사주카페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점쟁이들도 어엿한 직업인으로서 신분이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돈 받고 점치는 행위도 이제는 「예측산업」이라고 부를 정도가 됐으니 점쟁이를 예측인이라고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에 관계없이 자신의 앞날이 불안하거나 궁금하면 점을 보아왔다. 젊었을 때는 점에 대해 우습게 여기거나 미신이라고 멀리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도 모르게 거부감이 없어진다. 어쩌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풍습이 몸에 베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이라는 것은 분명히 비과학적인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은 웬일인지 점을 좋아한다. 이들은 과학교육을 받았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신세대인데도 그러니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점에 이용되는 컴퓨터가 과학시대의 첨단기기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네티즌들이 점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모양이다.
지금은 첨단과학시대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는 비과학적인 일에 대해 아주 잘못된 것이라며 배척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때 점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점괘가 맞고 안 맞고는 나중의 문제인 것이다.
컴퓨터에 대어놓고 고행성사를 하고, 컴퓨터에게 자신의 장래를 물어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음은 서글픈 일이다. 스스로 일으켜 놓은 기계문명에 덜미가 잡힌 인간들의 모습이 점점 왜소해지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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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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