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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이나 TV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가입자의 신상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동통신회사나 신용카드 회사의 직원들이 오히려 고객정보를 유출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다. 이는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그만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의 정보화사회에서는 사회구조가 개인의 신상정보를 이용해야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되어가고 있다. 그런 만큼 이동통신회사나 신용카드업체에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는 일은 회사운영의 첫번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유출시키고 있으니,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우리의 앞날은 지극히 불행한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제(23일) 내려진 서울지법 형사지법 한주한판사의 판결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만하다. 고객의 정보를 수백마원에서 수억원을 받고 신용카드업체 및 보험회사에 팔아넘겼다가 지난 9월 검찰에 적발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약식기소됐던 인터넷회사 27개사와 법인 대표 24명이 무더기로 정식재판에 회부된 것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서울지법 형사22단독 한주한 판사는 "회원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신상정보를 다른 업체에 넘기는 행위는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을 심화시키는 범죄행위인 만큼 공판과정에서 철저한 심리를 통해 적절한 형량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개인정보유출과 관련한 범죄는 불구속 입건에 그치거나 약식기소하는 것이 관례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판결은 이례적인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한판사가 그 동안의 관례를 깨고 관련자들을 정식재판에 넘긴 것은 우리사회에서 범람하고 있는 개인정보유출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사법당국이 지금까지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 다소 관대(?)했던 것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법률에는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 등 기초적인 개인 신상에 해당하는 개인 식별정보를 거래했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행법은 개인정보를 제공한 사람만 처벌하고 제공받은 사람은 처벌할 수 없는 맹점을 안고 있어 이런 유형의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할 여지가 많다.
더욱이 통신기밀을 누설할 때는 형사처벌하면서 개인정보보호를 위반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과태료만 부과하는 현실이니 일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사전에 개인정보유출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머지 않아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완전히 노출된 가운데 벌거벗은 채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보화사회에서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할 개인정보가 이렇게 허술한 제도 때문에 줄줄이 새고 있음은 정말로 큰일이다. 사태의 심각성은 통계수치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개인정보침해신고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13건이었던 개인정보보호 침해 신고건수는 지난해 12월에는 533건, 올해 4월에는 1042건으로 늘었다. 또 올 7월말까지 총 신고건수가 7009건에 달해 지난해 1년간 신고건수인 2297건의 3배에 달할 정도이다.
지난 16일에는 변호사 등의 부탁을 받고 세무서, 지역 건강보험공단, 전국 시·군·구청 등 관공서를 통해 44만 4000여건의 개인 정보를 빼내온 6개 신용정보업체 직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모두 44만4740건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주고 그 대가로 건당 10만∼30만원씩 모두 33억5600만원을 받아 챙겼다가 덜미가 잡혔다.
특히 우리나라 성인 대부분이 가입자인 이동통신회사들의 고객 개인정보 관리실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4천3백여개 대리점 직원과 연결만 되면 통화내역이나 신상기록을 얼마든지 캐낼 수 있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마음놓고 휴대폰으로 통화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리점의 신상정보 조회는 전산기록이 남지 않으며, 감사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어 개인정보가 얼마나 누출되는지 정확한 파악조차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동통신회사들은 이 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정보의 침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 있어 기업의 도덕성조차 의심을 받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이동통신회사나 신용카드업체, 신용정보회사 뿐만 아니다. 어느 곳보다도 개인의 정보를 보호해야 할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에서도 이를 소홀히 하고 있음이 드러나 크나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최근 종합법률정보제공업체, 민간기관, 학계 등 독자적으로 판례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66개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이중 33.3%인 22개 사이트가 개인정보 보호에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각종 판례를 제공하는 사이트중 3분의 1이 개인정보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판례전문을 수록함으로써 사건 당사자의 실명과 주소 등 주요 인적사항이나 사건의 내용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사이트가 17개였으며, 실명은 가리면서도 주소나 차량번호·연고지 등 다른 개인정보를 그대로 노출시켜 당사자의 신원을 알 수 있게 한 사이트도 5개였다.
모 변호사 홈페이지의 경우 미성년자 강제추행 같은 성폭력 사건이나 이혼사건 등에 대한 주요 판례를 실명과 함께 판례 전문을 그대로 수록하고 있었으며, 여성인권 사이트나 의료법률 관련 사이트에서도 관련판례를 제공하면서 실명과 주소 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음을 밝혀졌다.
당국에서는 개인정보 침해사고가 급증함에 따라 지난 7월 중순부터는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뿐 아니라 항공사·여행사·학원 등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제공하는 경우에도 개인정보보호 관련의무를 부과하고 개인정보를 유출하거나 매매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 개인정보유출이 근절될 수는 없다. 관련법을 개정하는 일 외에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신상정보를 보호하려는 의식을 굳게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특히 회원의 신상정보를 갖고 있는 관련업체가 직원들에 대한 보안교육을 철저히 하는 노력도 강화돼야 한다.
개인정보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으면서 정보선진국, 정보강국이 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나 시민단체, 국민들이 힘을 모아 현행법체계에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즉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겉잡을 수 없이 발생하고 있는 정보유출사태를 계속 방치했다가는 엄청난 불행을 겪게 될 것임을 모두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200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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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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