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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에 생각해보는 사이버 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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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일)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여 반포하신지 꼭 555돌이 되는 날이다. 한글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글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외국의 학자들도 한글처럼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가 없을 것이라고 극찬할 정도이다. 오늘 한글날을 맞아 과연 우리는 이렇게 훌륭한 한글을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한글을 아름답게 가꾸고 다듬는 데 힘쓰는가, 혹시 더럽히고 훼손시키지는 않는가. 어느 민족보다 훌륭한 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제멋대로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한글날에 즈음하여 우리말 살리기 운동이 한창이다. 특히 천리안·하이텔·유니텔 등 3대 인터넷통신 동호회에서는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는 「인터넷말투」가 우리말과 글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심각히 여기고, 이를 막기 위해 「인터넷상의 우리말 살리기 네티즌 운동」을 펴고 있다. 청소년들이 주로 찾고 있는 인터넷동창회 사이트인 다모임(www.damoim.net)도 청소년문화사이트인 아이두넷(www.idoo.net)과 함께 「온라인상의 언어파괴는 이제 그만!」이라는 주제로 올바른 우리말 쓰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홈페이지를 보면 청소년네티즌들의 호응이 대단하다.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람이 4천명을 넘어섰는데 대부분 "언어파괴가 이렇게 심각한 상태인 줄을 몰랐으며, 앞으로는 가급적 자제하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있다. 지난 8월 22일부터 시작된「언어파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게시판에도 1천건에 가까운 의견이 올라와 있다. 사실 PC통신이나 인터넷상에서의 언어파괴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른바 사이버은어는 90년대 중반 PC통신을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제는 네티즌이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는 「방가방가」(반갑습니다)나, 「안냐세여」(안녕하세요) 등의 말은 당시 비싼 통신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만들어낸 축약어(縮約語)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글파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네티즌의 호기심과 창작정신(?)이 서로 어울려 「안대」(안돼), 「시로」(싫어),「저나」(전화), 「셤」(시험),「잼써따」(재미있었다), 「담탱이」(담임선생님)와 같은 표현법이 등장하면서 PC통신상의 언어파괴 및 변질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이 같은 「인터넷말투」 또는 「사이버은어」의 사용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지금도 지속적·경쟁적으로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사이버은어를 쓸 줄 모르면 왕따 당하는 것은 물론이다. 90년대 후반들어 네티즌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인터넷을 통한 채팅이 생활화되면서 사이버은어가 생겨나더니 이제는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정도로 파괴되거나 변질돼가고 있다. 이 때문에 네티즌은 「외계어족」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이다. 사이버은어는 이제 네티즌들만이 알아 볼 수 있는 정체불명의 언어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은어가 처음 나타날 때는 「속도」때문이었다. 컴퓨터에서의 대화, 즉 채팅은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데 또박또박 글쓰듯이 해서는 안되고 마치 말하는 듯한 속도로 차판을 두드려야 한다. 그래서 단어를 줄인 축약어를 만들거나 복잡한 받침을 피하고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다. 자판에서 손이 가기 쉬운 글자를 쓰기도 한다. 실제로 자판을 쳐보면 「∼해요」보다는 「∼해여」라고 쓰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 어린이들의 일기장이 황폐화되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레포트나 대학입시 답안지조차 맞춤법이 엉망으로 되어 담당교수나 채점자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네티즌이 사이버은어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같은 자기들끼리의 의사소통만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기존질서에 반항하거나 기성세대의 접근을 거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경향도 다분히 있다고 하겠다. 인터넷상의 언어파괴현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긍정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부정론자들은 인터넷에서의 언어파괴현상은 결국 세대간의 괴리감 형성은 물론 또래간 의사소통에도 장애를 일으켜 국가적인 위협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은어들이 이제는 실생활에서도 버젓이 쓰이다 보니 세대간에 의사소통이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결국 국가적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도 있다. 지나친 언어파괴나 변질이 서로간의 의사소통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도가 되어서는 언어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이버은어가 정보화사회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는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으며, 상대방의 신분이나 기분 등과는 관계없이 비속한 사이버은어를 씀으로써 온라인상의 예절이 실종될 우려도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긍정론자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서 축약어나 은어를 사용하는 것은 보다 빠른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창출된 새로운 언어문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나 건설현장, 인쇄분야 등 특정한 조직이나 법률가나 의사 등 전문가집단에서 나름대로의 은어가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듯이 사이버은어 역시 인터넷공간에서 쓰이는 네티즌들의 고유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이버문화연구소장 민경배씨 같은 이는 통신언어는 「글」이 아니라 「말」이기 때문에 "맞춤법을 헝클어뜨리고 문법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네티즌들이 채팅을 할 때 모니터상에는 글이 나타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글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법적으로 잘 정제되어 있어야 하는 글과 달리 비문법적으로 사용되는 말에 속하는 통신언어(사이버은어)를 두고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이런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비약적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그것이 아무리 시대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하위문화라고 하더라도 우리말이나 글의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일이라면, 이를 배척하거나 걸러야 마땅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제 네티즌들은 생각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언어파괴현상이 문화발전의 한 단계이냐, 아니면 새로운 환경이 빚고 있는 일시적인 부작용이냐를 분별해야 한다. 언어란 그것이 비록 유행어라고 할지라도 관용화되면 고착언어로 자리잡게 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지금 즐겨 쓰고 있는 사이버은어가 관용어로 굳어져도 좋은지를 네티즌들은 판단해야 한다. 한글은 우리들이 후세에 물려줘야 할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그런 만큼 한글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한글을 다듬기는커녕 손상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석 같은 한글을 갈고 다듬고 지키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대신 해주겠는가. ----- 200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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