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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여왕도 갖게 된 휴대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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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여행을 하다보면 한번 정차했다가 출발할 때는 반드시 차내방송으로 핸드폰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듣게 된다. 내용은 객실에서 휴대전화를 하면 다른 승객의 여행에 불편을 주게 되므로, 명랑한 여행을 위해서 벨소리는 진동으로 해놓고 전화가 오면 밖으로 나가서 통화하라는 것이다. 휴대폰이 대량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3∼4년 전에는 이 같은 안내방송에 따라 객실 밖에서 통화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승객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벨소리를 그대로 둔 채 전화가 걸려오면 그 자리서 받아 통화하는 경우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안내방송의 당부를 따르는 사람보다는 마음 내키는대로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았다가 신호가 오면 가만히 나가서 통화를 하는지 모르지만, 얼핏 보기에는 그런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고 안내방송과는 관계없이 그냥 벨소리를 울리게 해놓았다가 전화가 오면 큰 소리로 통화한다. 남들을 의식해서 낮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에 속한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객실 안에서의 휴대폰통화를 삼가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한 것은 휴대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지난 97년경부터라고 생각된다. 셀룰러폰만 보급되다가 PCS폰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짐작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런 내용의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객실 내에서의 통화금지」가 어지간히도 지켜지지 않는 모양이다. 어떻게 보면 철도청이나 승객 모두가 "나의 길을 가련다"며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철도청은 승객들이 지키든 말든 통화금지를 주장하고, 승객들은 방송이 나오든 말든 「통신의 자유」를 누리려는 것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최근 저술관계 때문에 한달에 2∼3회 서울에 출장을 간다. 그럴 때마다 "휴대폰통화를 객실 밖에서 하라"는 차내방송을 듣는다. 그런데 지켜지지도 않을 건데 왜 방송을 끈질기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심하게 말하면 핸드폰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방송 자체가 시끄러운 지경이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는 벨소리가 크게 들리거나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채 큰소리로 통화하는데 대해 불쾌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그러는가 보다고 생각하거나, 다소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참아야지 하는 마음들을 갖게 된 것 같다. 적어도 필자는 그런 입장에 있다. 심하게 말하면 차안에서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사람보다는 여럿이 앉아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밉다고 해야겠다. 것보다는 차라리 핸드폰통화하는 것이 덜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이다.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은 필자가 객실 안에서 통화를 하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가 보다라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사실 필자도 처음 몇 년은 철저하게 지켰는데 기차여행을 자주 하다 보니 만성이 돼서 그런지 몰라도 의자에서 일어서기가 귀찮으면 염치불구하고 살짝 통화를 한다. 아직은 초보(?)단계여서 그런지 목소리를 매우 낮추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대폰통화를 아주 즐긴다는 것은 사실이다. SK텔레콤이 발간하는 텔레콤월드가 지난해 초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휴대폰 이용자(SK텔레콤)들의 월평균 통화시간은 150분으로 세계 최고인 미국(AT&T)의 180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3위는 프랑스(프랑스텔레콤)의 137분, 4위는 핀란드(소네라)와 덴마크(텔레덴마크모빌)로 둘 다 130분이었다. 한편 스페인(텔레포니아)과 이탈리아(TIM)는 월사용시간이 각각 122분과 121분이었으며, 이어 일본 116분, 노르웨이 91분 등의 순이었다. 한국을 제외한 세계 11개국의 평균 사용시간은 114분으로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통화할 수 있는 휴대폰은 정보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정보통신회사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일반에 널리 보급됨으로써 불과 몇년 사이에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초등학교 어린이에서부터 8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갖고 있는 소지품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75)라고 해서 휴대폰을 외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 해 벨소리가 신경을 거슬린다는 이유로 시종들에게 근무 중에는 휴대폰의 휴대를 금지한 바 있는 그녀가 최근 생애 처음으로 휴대폰을 갖게됐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들 앤드루 왕자로부터 최신 모델의 휴대폰을 선물 받고 사용법까지 아들에게서 배운 뒤 친지와 경마에 관해 잡담하는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휴대폰을 가져야겠다는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진다. 휴대폰이 참으로 편리하다는 것을 사용해본 사람이면 다 안다. 남이 사용하는 것을 봐도 참 편리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우선은 편리성에 점수를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연로한 여왕이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필수품으로 갖고 다니는 휴대폰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위에서 열거한 이유 외에도 휴대폰 벨소리에 만성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 휴대폰 벨소리는 처음에는 매우 거슬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적응이 되면서 익숙해진다. 아마 엘리자베스 여왕도 휴대폰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단계를 지나 익숙해져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휴대폰을 갖게 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지난 달 25일자 영국의 더 선지(紙)가 보도한 것을 보면 그 직전일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9월11일 발생한 미국 대테러 참사 사건에서 휴대폰이 아주 요긴하게 쓰인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을 수도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갖게 된 휴대폰-. 필요하면 그 자리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폰에 대해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용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든 가리지 않고 휴대폰을 사용하는 행태는 이미 대세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쯤 됐다면 이제는 휴대폰의 사용을 일방적으로 막기보다는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공중도덕을 지키는 일인지를 가르치는 게 더 시급한 숙제라고 하겠다. ----- 200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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