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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민심 제대로 읽으라
백제시대의 노래 '정읍사(井邑詞)는 천년을 이어온 연가(戀歌)다. 길 떠난 남편이 위해(危害)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소곳이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임을 그리는 영원한 기다림의 여인상을 묘사한 '망부상(望夫像)'은 전북 정읍시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양봉 기슭에 세워져있다. 몇 년 전 백제의 아낙이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望夫石)이 됐다는 바위를 찾아 취재에 나섰던 적이 있다. 정읍의 백제시대 때 이름인 정촌현(井村縣) 북쪽 10리 고개에 망부석이 있다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근거로 현지 전문가와 함께 가능성이 있는 세 곳을 누볐다. 일부 지방신문에서는 정읍시 망제동 두승산 기슭에 있는 너럭바위를 망부석이라고 보도했지만 확실한 고증도 근거도 미흡하다. 망부석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남편을 걱정하며 그 자리에 돌이 되도록 기다린 여인의 심정은 더욱 애틋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팔월 한가위, 고향으로 가는 추석이다. 올해도 3,200여만명의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고향의 어머니들도 '정읍사' 속의 여인처럼 객지에 나간 피붙이를 기다리며 동구밖에서 서성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은 오붓한 정을 나누고 고향친구들과도 따뜻한 정담이 오갈 것이다. 민족 대이동을 통해 도회지와 시골, 중앙과 지방의 의견들이 만나면서 민심이 형성된다. 그것이 바로 추석민심이다. 친지나 친구들이 모여 앉으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지난해 추석엔 북한에서 보낸 송이가 단연 화제였고, 한빛은행 거액 부정대출 사건이 궁금증의 압권이었다. 올 추석에는 뭐니뭐니해도 '이용호 게이트'가 압도적인 화두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이용호 게이트' 압도적 화두 될듯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한 '천재적 기업사냥꾼'의 횡령, 주가조작과 불법로비라는 단순구도로 돼 있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과 그 주변 인물들과의 유착고리가 고구마 넝쿨처럼 물려 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연일 불거져 나오는 새로운 의혹의 사슬 속엔 지역연고의 병리현상도 한 몫 끼어들고 있다. 야당은 깜짝 놀랄만한 실세들이 연루된 비망록이 있다며 권력핵심부를 겨냥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검찰은 특별감찰본부를 발족시켜 수사에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아직은 답보상태다. 대추나무에 연 걸리 듯 얽히고 설킨 권력과의 유착고리 의혹을 얼마나 명쾌하게 파헤칠지 의구심의 눈초리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부패한 살덩이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아픔을 겪지 않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음을 직시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다. 축소·은폐수사를 할 경우 검찰은 지금보다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추석 연휴를 맞아 귀향활동을 펼 것이다. 사랑방 좌담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무릎을 맞대고 말없는 국민 다수의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민주정치의 요체는 민심을 존중하고 수렴하는 것이다. 요즘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민심이반의 핵심은 국정 전반에 걸친 총체적 불신감에 있다. 불신감은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안일한 상황판단에서 비롯됐다. 위기의식 못 느끼는 불감증 심각 한화갑 최고위원이 "권력의 핵은 청와대인데 밖에서 일어난 일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발언도 권력핵심의 불감증을 지적한 대목이다. 김근태 최고위원의 "당과 정부, 청와대가 위기상황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맥을 같이한다. 최근 한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이 시국에 불안을 느끼고(65%), 정부의 경제개혁정책이 잘못 추진되고 있다(79%)며 정치·경제에 대한 실망과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도가 취임 1주년인 1999년 2월의 70.8%에서 19.7%로 떨어진 것도 국민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는 풀이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야 올바른 해답이 나오듯 민심도 제대로 파악해야 전향적인 해결방안이 나온다. 지난해 추석 때도 여야의원들이 전한 추석민심은 소속과 정당과 지역에 따라 크게 엇갈렸다. 민심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해결방안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백제의 여인이 남편을 걱정하고, 어머니가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민심을 올바르게 추스를 수 있다. 민심이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파탄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일요서울 2001.09.28. ------- 시인 일요서울신문 편집인 겸 편집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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