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2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19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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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들이여, 파일럿들을 이겨다오

많은 네티즌들의 관심과 참여속에 지난 7일부터 전주시 화산체육관에서 열렸던 「컴퓨터게임 엑스포 2001」이 9일 막을 내렸다. 대회기간동안 행사가 벌어졌던 체육관은 사흘 내내 네티즌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고 한다.

네티즌들이 밥먹기보다 더 좋아한다는 컴퓨터게임과 관련한 행사였으니 그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1만명이 훨씬 넘는 관중(네티즌)이 체육관은 꽉 메운 채 프로게이머가 벌이는 게임을 흥미진지하게 관전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고 적이 놀랐다.

만약 앞쪽 단상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두 선수의 모습만 아니었다면 그것은 영락없이 농구나 배구경기가 열리고 있는 체육관의 광경이었다. 2천3백만에 가까운 인터넷사용자 대부분이 컴퓨터게임을 즐긴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컴퓨터게임을 보러 체육관을 찾는 것은 필자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필자는 이번 게임에서 누가 이겼으며, 우승자가 받은 상금이 얼마였다거나 프로게이머의 인기가 프로야구나 축구선수, 또는 가수에 못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 컴퓨터게임인구가 엄청나게 많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컴퓨터프로게임리그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번 행사에서 필자의 관심을 특별히 끈 것은 공군조종사와 프로게이머가 벌였던 「사이버비행전투」였다. 이 경기는 조종사들과 게이머들이 두명씩 출전하여 2대2로 조이스틱과 단축키, 마우스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 전투기를 10분내에 격추시키는 방식으로 사흘간 벌어졌다. 게임이름은 「팰컨(F-16) 시뮬레이션 전투」였다.

게이머들이 아무리 직업적으로 컴퓨터게임을 하는 사람들이고 비행시뮬레이션게임 펠컨을 10년 정도 해왔다고 하지만, 직업군인인 파일럿들이 평소에 실전과 다름없이 하는 훈련과 같은 내용이라는 점에서 승리는 당연히 그들의 것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게이머가 승리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네티즌도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번 대결은 어디까지나 게임이지 실제상황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현장과 인터넷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7일의 첫날 전투에서는 게이머들이 예상을 뒤엎고 일방적으로 승리했다. 게이머들을 응원하던 네티즌들은 환호했으나 조종사들이 이기리라고 점쳤던 필자로서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하늘을 방호하는 빨간마후라의 파일럿들인데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격파 당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8일의 둘쨋날 전투에서는 파일럿들이 어느 정도 전투요령을 터득했는지 겨우 비기는데 성공(?)했다. 첫날보다는 게임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전투력이 다소 향상되었던 것이다. 전투에 참여한 조종사들이 들으면 섭섭할 지 몰라도 첫날 일방적으로 당한 패배를 생각하면 무승부 자체가 성공이라고 해도 잘 못된 표현은 아니라고 하겠다.

9일의 세쨋날 전투는 필자의 마음을 아주 기쁘게 해주었다. 우리의 「탑건」들이 마침내 게이머들을 물리친 것이다. 필자의 이런 생각과 표현에 기분이 언짢아지는 독자가 있다면 용서해주길 바란다. 필자는 젊은 세대가 아니라 쉰세대이며, 뛰어난 실력의 게이머보다는 국방을 튼튼히 하는 군인들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늙은 네티즌」이기 때문이다.    

첫날에 지고 둘쨋날에 겨우 비겼으니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조종사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필승의 전의를 가다듬은 조종사들은 마지막 전투에서 그들은 평소에 갈고 닦은 화려한 전투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일자대형과 평면대형 등 빼어난 기동력과 지능적인 유인전술을 구사한 끝에 7분만에 완승을 거두면 첫날의 패배를 완전히 설욕한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F-16 전투기 비행경력 7∼8년의 베테랑들이 그대로 주저앉아서야 될 일인가. 사흘간의 치열한 전투는 결국 1승1무1패,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만약 공군조종사들이 참패를 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공군조종사들은 실제비행을 하면서 실전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것 외에도 실전감각과 비슷한 시뮬레이션으로도 많은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게이머들에게 일방적으로 졌다면 참으로 창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 시물레이션전투를 지켜본 게임전문가들은 1대1 전투에서는 컴퓨터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게이머들이 유리했지만 2대2전투에서는 항상 짝을 찌어 편대비행을 하는 작전과 전술훈련을 하고 있는 파이럿들이 훨씬 앞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종사의 편에 서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이제 마음을 돌리고자 한다. 다시 한번 이 같은 게임이 벌어진다면 이번에는 조종사들이 아니라 게이머들이 승리하라고 응원할 것이다. 지나친 비약인지 모르겠지만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수조종사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는 생각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투결과는 컴퓨터게임에 대한 필자의 시각을 새롭게 해주었다고 하겠다.

끝으로 프로게이머들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내년에는 반드시 공군조종사들에게 3대0 스트레이트로 이겨달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파일럿들의 전투능력이 더욱 향상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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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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