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18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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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그해오늘은] 수인(囚人) '오 헨리'



1862년 오늘 태어난 윌리엄 포터를 아는 이는 드물다. 1910년 숨진 '오 헨리'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연인에게 시계줄을 사주기 위해 머리털을 팔고 머리핀을 사주려 시계를 팔았다는 그의 단편 '현자의 선물'은 잘 알려져 작품을 읽지 않고도 이야기를 아는 이가 많다.

그러나 오 헨리의 생애는 '현자의 선물'처럼 종교적이기보다 '금고털이'나 '경관과 찬송가'에서처럼 '어둠의 자식들'과 가까운 분위기였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를 여읜 그의 숙명이었다.

숙부의 약국에서 일하다 스무살에야 텍사스로 가서 카우보이 등 잡일을 하던 시절, 그의 모습은 '20년 뒤'나 '경관과 찬송가' 같은 데서 얼굴을 내미는 거친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1891년에는 오스틴의 은행에 취직해 팔자가 펴지는 듯했으나 3년 뒤에는 공금횡령으로 쫓겨나고 그 2년 뒤에는 검찰의 수배를 받아 남미로 도망가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의 병세가 위독하자 돌아와 철창생활을 감수한 그의 가슴은 '마지막 잎새'의 아가씨들처럼 여리다. 그의 소설이 어두우면서도 애수가 곁들인 휴머니즘을 풍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1898년 '횡령범 포터'로 교도소에 들어간 그는 1901년 '소설가 오 헨리'로 출옥한다. 이 필명은 그가 복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딸에게 감추려 썼던 것이나 오 헨리가 출옥한 뒤에는 물론 죽은 뒤에도 길이 남았다. 그는 모파상, 체홉 등과 함께 단편소설 트리오로 꼽히기도 한다.

오 헨리의 경우야말로 '교도소'가 이름값을 해 그는 거듭나 감방생활은 물론 삶 자신의 어두운 체험들을 아름답게 용해시켰다. '마지막 입새'에서 앞집 벽의 담쟁이 덩굴이나 보고 살던 아가씨들의 방도 그의 감방을 꾸민 것이다.

금융범죄라면 한국도 지지 않지만 아직 세계적 작가가 나오지 않은 것은 교도소에 담쟁이가 없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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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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