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8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17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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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는 이유

조선시대 선비들은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정치에 환멸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은둔의 삶을 살았다.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자연을 벗삼아 글 쓰고 술 마시며 유유자적했다. 그들이 지은 글을 두고 후학들은 현실도피적 '산림문학'이라고 비판하지만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면 뒤엉킨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비문화를 간직한 지역 중 한 곳이 전남 담양이다. 담양은 조선 중기, 수많은 정자를 중심으로 가사문학이 활짝 꽃 핀 곳이다. 식영정 (息影亭), 취가정(醉歌亭), 송강정, 면앙정, 소쇄원, 환벽당 등은 당시 호남문단을 이끈 주요 활동 무대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남면 지곡리에 위치한 식영정을 좋아한다.

식영정은 광주호를 발끝에 거느리고 성산을 마주한 언덕배기에 고매한 선비처럼 둥지를 틀고 있다. 누마루에 앉아 푸르고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 눈길이 시원해지고 대숲을 거쳐온 솔바람 소리가 귀를 맑게 씻어준다.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지은 '성산별곡'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광주호로 흘러드는 증암천을 예전에는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다. '자미'는 우리말로 배롱나무. 흔히 목백일홍이라 부른다. '탄'은 여울이니 자미탄 둑을 따라 목백일홍이 붉은 자태를 뽐내며 줄지어선 옛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가사문학관'에 들리면 송강의 손때묻은 친필 등 유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가사문학관 뒤쪽엔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작은 정각이 있다. 서편제의 큰 줄기 박동실 명창이 김소희 박귀희 한애순 등 쟁쟁한 명창들을 길러낸 곳이다. 박동실 명창의 월북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리꾼들의 풍류가 넘치던 곳이다.

식영정이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삶의 여백을 주는 공간이라면, 맞은 켠 취가정에 오르면 선비들의 멋과 풍류를 떠올리게 된다. 사설시조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쓴 송강은 꽃을 꺾어 술잔을 셈하며 술을 마실 정도로 멋과 풍류를 즐긴 주당파(酒黨派)다. 술꾼들이 늘 술 마실 핑계를 찾듯 송강은 '기주유사(嗜酒有四)'라 하여 술을 마시는 네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이유가 기쁠 때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슬픔은 술로 푼다는 것이다. 또한 먼데서 벗이 찾아오면 어찌 아니 마실 수 있겠느냐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권하는 잔을 뿌리칠 수 없어 마신다는 네 번째 이유에서 풍류객의 멋을 엿볼 수 있다.

옛 선비들의 술 풍류가 어찌 송강 뿐이겠는가. 칼과 거문고로 일세를 풍미한 백호 임제는 황진이 묘를 찾아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한다'고 읊었다. 주상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린 풍류호걸 양녕대군, 방랑시인 김삿갓, 판소리 풍류가객 신재효 등은 허명과 사익을 멀리 한 풍류객들이었다.

채근담에는 '꽃은 반만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술은 적당히 취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적당히'라는 양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기분좋은 정도다. 술은 비와 같다고도 한다. 비가 진흙에 내리면 진흙탕이 되지만 옥토에 내리면 꽃을 피운다. 얼마전 어느 여성 국회의원이 취중욕설로 곤욕을 치루었지만 적당히 즐겁게 마시는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윤활유 구실을 할 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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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
일요서울신문 편집인 겸 편집국장
<'주류저널'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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