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1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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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새겨진 현대판 주홍글씨

나다니엘 호손이 1850년에 쓴 장편소설「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는 17세기 중엽 청교도의 식민지 보스턴에서 일어난 목사와 젊은 여인의 간통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구성이 치밀하고 주제가 심오하다는 점에서 19세기 미국문학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늙은 의사와 결혼한 헤스터 프린이라는 여인이 딤스데일이라는 목사와 간통을 저질러 헤스터는 펄이라는 사생아를 낳는다. 헤스터는 간통한 벌로 공개된 장소에서 adultery(간통)의 첫글자인 「A」자를 가슴에 달고 일생을 살라는 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간통한 상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지 7년 뒤 새로 부임한 지사의 취임식날, 목사는 설교를 마친 뒤 헤스터와 펄을 가까이 불러 놓고 그녀의 가슴을 헤쳐 보인다. 그녀의 가슴에는 「A」자가 있었다. 목사는 그 자리에서 죄를 고백하고 쓰러져 죽는다.  

법적인 형평성과 위헌여부 등에 따른 찬반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1백69명의 명단이 마침내 어제(30일) 공개되었다.  명단이 공개된 곳은 인터넷과 관보, 정부청사게시판이며 이름과 나이, 주소, 범죄사실 등을 밝히고 있다. 이렇듯 현대판 주홍글씨는 죄인의 가슴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다 쓰고 있다.

이 같은 일이 처음인지라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홈페이지는 호기심에 찬 방문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하루종일 마비상태가 빚어지고 있다. 용케 접속에 성공한 네티즌들은 재빠르게 언론사나 관공서 등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신상공개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서 올리기도 한다.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를 놓고 한쪽에서는 이중처벌과 인권침해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우리사회의 비뚤어진 성문화를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며 환영하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는 비록 이름은 공개되었지만 공개대상자와 가족들의 인권을 존중해서 주소나 직업 등은 상세히 밝히지 않았다며 이름에 한자를 병기하고 생년월일을 밝혔기 때문에 동명이인의 피해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직업을 제한적으로 밝힌 데다가 같은 직업이나 비슷한 주소를 가진 동명이인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만큼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더욱이 명단공개는 일단 형사처벌한 사람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와 고통을 줌으로써 이중처벌이 되는 것이고 인권침해의 소지도 다분하다고 하겠다.  

인터넷사이트에서도 찬반양론으로 갈려 분위기가 자못 뜨겁다. 어떤 이는 일부 선진국에서는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 전과자가 같은 동네로 이사만 오더라도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성범죄자에 대해 엄하게 다루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다소 늦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단체에서도 이번 조치가 성범죄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찬성하면서 명단공개가 성범죄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라는 점에서 성범죄자의 얼굴사진이나 주소지까지 공개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론의 목소리도 크다. 한번 처벌받은 사람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이중처벌이며, 성범죄자 본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들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지나친 처사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체면을 생명보다 더 중시하는 우리 국민의 뿌리깊은 의식을 감안할 때 신상공개는 사회적인 매장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나라는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경찰청 컴퓨터를 이용해 성범죄자의 얼굴사진과 이름, 신체적 특징, 성범죄 요지 등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6세 미만 청소년과의 성행위를 강간으로 처벌하면서 신상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필요하면 아동성범죄자의 기록을 공개하며 성범죄자는 거주지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조치를 지켜보면서 성범죄자의 신상을 굳이 무한복제가 가능한 인터넷에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벌써부터 신문사나 관공서의 홈페이지에 명단이 복사되어 올려져 있어 청소년보호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찾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명단을 읽어 볼 수 있게 됐다. 얼마가지 않아  수많은 사이트의 개시판에서 성범죄자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심하게  말하면 나쁜 짓을 한 사람에게 실컷 매를 때려놓고 나서는 다른 사람에게 회초리를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 이중처벌이 아니라 삼중, 사중처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성범죄자의 명단을 공개하는 일이 크게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흙탕이 된 성문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문제는 개인신상을 다름아닌 인터넷에 올려놓음으로써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걱정된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보호위원회측은 명단을 공개할 때 대상자들이 범죄자이기 때문에 굳이 인권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가졌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걱정이다. 더욱이 인터넷의 위력을 알면서도 그랬다면 그것은 걱정의 차원을 넘어서 무서운 일이다. 다른 경우에도 예사로 개인신상을 공개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그런 일이 거듭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 출발한 일이라고 해도 그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 설득력을 잃게 된다. 이번 일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모두가 바라는 선(善)을 추구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지금은 인터넷시대이다. 이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일이다. 만약 이번 일을 놓고 나쁜 사람 벌주는 일에만 눈이 가고, 개인의 신상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아무런 거리낌없이 마구 공개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터넷시대를 살아가는 네티즌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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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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