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2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12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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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명예훼손, 더 이상 용서받지 못한다

「남의 체면을 손상하게 하고 그 명예를 더럽힘」-국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는 명예훼손의 뜻이다. 그렇다면 사이버명예훼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이버공간에서 저지르는 명예훼손행위를 가리킨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킨 20대 후반의 무역회사 직원(28세)이 7월1일부터 개정시행된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한 이른바 「사이버명예훼손죄」에 저촉돼 경찰에 구속됐다.

이 청년의 혐의사실은 지난 6월말과 7월초 두 차례에 걸쳐 인터넷 채팅사이트 게시판에 헤어진 여자친구(24세)의 실명으로 "성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는 글과 전화번호를 올려 이를 본 네티즌들로부터 하루 수십차례의 음란성 전화를 받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 청년에게 적용된 관련법 제61조 2항은 「정보통신 등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허위사실을 적시, 명예를 훼손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인 기존의 형법상 명예훼손죄보다 중형이다.

사이버스페이스란 이름 그대로 가상공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실세계도 아닌 가상공간에서의 명예훼손행위에 대해 사법당국이 이처럼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이 같은 사이버범죄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만큼 상황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내용이나 허위사실이 인터넷게시판에 한번 오르게 되면 피해자의 명예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인터넷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에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이 이번에 관련법을 고쳐 사이버공간에서의 명예훼손행위를 보다 엄하게 처벌키로 한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하겠다.

사이버명예훼손의 사례를 보면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여성이나, 사귀다가 헤어진 애인의 실명으로 "섹스파트너를 구한다"는 등의 내용과 함께 전화번호와 e메일주소를 게시판에 올리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때는 사이버스토킹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이름을 사용하여 음란채팅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럴 경우 인적사항을 도용 당하는 사람의 자신도 모르게 명예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같은 학교 학생들이 보는 인터넷사이트에 여자 알몸사진을 올려놓고 마치 피해자의 것인 양 표시했다가 적발된 사람도 있다. 지난해에는 10대 딸이 인터넷게시판에 자기 어머니의 실명과 직장이름을 밝힌 채 불륜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인터넷이용자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사이버공간은 이제 상상의 범위를 넘는 일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인터넷이용이 일반화되면서 앨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 같은 미래학자들은 물론 컴퓨터의 황제 빌 게이츠까지도 인터넷이 우리 인류의 장래를 훨씬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특히 패미니스트들은 익명성과 비대면성, 그리고 표현의 자유라는 인터넷의 특성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현실세계의 억압구조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이것이 사회현실에 반영되어 남녀가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여성인터넷 이용인구가 절반에 이르는 지금 이들의 예측은 빗나가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조차 남성들은 공격적인 성향을 띤 채 여성들에게 군림하려 하고 있다. 상대방이 여성(여성을 가장한 남성이라 하더라도)인 줄 알게 되면 갑자기 남성으로서의 우월감을 갖고 이쪽을 대하게 된다. 사이버공간에서도 힘의 논리나 성차별 구조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하면서 느꼈던 짜릿함은 바로 여성이라는 질긴 육체성의 질곡으로부터 풀려났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함으로써 탈성화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채팅방에 들어가면 무엇보다 먼저 성별을 밝힐 것을 요구받고, 게시판에서는 낯설고 공격적인 토론관행에 손이 얼어붙는다. 시스템 개발자와 사용자의 다수가 남성인 상황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지배적인 남성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웹진 「달나라딸세포」를 만드는 사람들이 쓴 글의 일부이다. 이 글은 사이버공간이 어떤 곳이며, 현재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함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는 누구나 자기주장을 강하게 표현하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익명성과 비대면성 때문이다. 그래서 내성적인 사람도 과격한 표현으로 욕설 또는 비방을 하거나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계에 지나지 않는 컴퓨터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인격은 필요 없다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이버명예훼손 등 가상공간에서의 갖가지 범죄행위에 대해 사법당국의 잣대가 매우 엄격해졌다. 네티즌들은 이제 사이버공간이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표현함으로써 남의 명예를 훼손시켜도 상관없는 방종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사이버공간은 자유로운 정보의 소통과 표현의 자유의 폭넓은 보장이라는 순기능 뿐 아니라, 허위사실유포에 따른 명예훼손과 익명성을 이용한 질 낮은 언어가 범람하는 등 역기능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일정한 법적 제한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홍준호판사가 지난해 PC통신 게시판에서 모 여가수의 팬클럽회원에 대해 근거 없는 내용으로 비난을 퍼부었던 사람에게 명예훼손죄를 적용, 벌금 3백만원을 선고하면서 밝힌 이 판결문은 인터넷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네티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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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월간 aha!PC 200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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