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2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10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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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야 할 길

흘러간 대중가요 가운데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라는 곡이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1960년대 중반 라디오연속극의 주제가였다. 당시는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시원찮은 터에다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 집도 그리 많지 않아 연속극 방송시간에는 동네사람들이 그 집으로 모여들어 진을 쳤다. 그러니 '하숙생'이라는 연속극과 그 주제가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연속극이 시작되면 그 거품은 슬그머니 사라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하숙생' 주제가는 달랐다. 끝난 지 몇 달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좀처럼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최희준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탓도 있지만 그 노래의 가사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가수나 노래 그 자체를 좋아하지만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정처없이 흘러서 간다"라는 그 노랫말에 매료되었다. 대부분 대중가요는 좋아하는 층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그 노래는 이른바 지식층까지 끌어들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 연속극은 주제가가 워낙 뜨는 바람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그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 거의 없다. 그러나 노래는 요즘도 장년층 이상에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인생길이 고달프고 허무하다는 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아니 사람이면 누구든지 이를 체험하며 실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에 이와 비슷한 길이 많이 등장한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나그네 설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길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이별의 종착역)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굽이냐. 유정천리 비가 오네 무정천리 눈이 오네"(유정천리) 등 인간의 한 평생이 얼마나 고달픈가를 한탄하는 노래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것으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를 들 수 있다 ."그 무엇보다도 난 내 길을 걸어 왔다네.(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난 사랑도 했고, 웃기도 울기도 했네.(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난 만족하기도 상실하기도 했네.(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이제 눈물을 거두니, 모든 것이 우습구만.(And now as tears subside, I find it all so amusing)...진정으로 느낀 것들을 말하고 비굴한 말들은 하지 않는 것.(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내 인생의 기록들은 내가 고난에 맞 섰으며 내 길을 걸어왔다고 보여준다네(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and did it my way)그래. 난 내 길을 걸어 온거야(Yes, I did it my way)

우리처럼 한탄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어려운 길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가를 강조한 점이 다 르지만 인생길이 험한 것을 노래한 점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노래만이 아니다. "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 갈까"라고 탄식한 김소월의 시 "길","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는데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며 살아가면서 항시 직면하는 선택 의 어려움을 피력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등 무수히 많다.

왜 이렇게 길을 내세워 삶의 고달픔을 한탄한 노래와 시가 많은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에 스스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숙명과 한계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 용어로 인간의 피투성(被投性)이라는 것이 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원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내던져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해 불안하기만 한 인생길에 오른 것이다. 그 인생길 전반을 영어 속담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인간은 울며 태어나서 불평하며 살다가 실망하며 죽는다 (We are born crying, live complaining, and die disappointed)"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 과 한계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불교의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길을 걷으며 용기와 희망, 만족 속에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도 시원찮을텐데 왜 이 렇게 사람들은 입만 열면 삶이 고단하고 험하다고 떠들며 기를 죽이는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 대답은 누구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기를 저하시키고 마음을 위축시켜 길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할 길의 상태가 어떤지를 미리 알아서 효과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주려는 것이다. 길을 나서기 전에 채비를 단단히 하라는 당부인 것이다.

인생길의 특징은 이정표가 없다. 아니 있기는 있다. 그러나 웬만한 노력과 지혜로는 그것을 확인하고 해독하기가 힘든다. 어느 면에서 사람은 거의 한 평생 이 일에만 매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갈래길을 만나며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가. 그 이후 잘 선택했다고 만족하는 사람보다 후회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현실이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며 헤매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그것은 초지일관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훨씬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교육이 있고 스승과 선배가 있는 것은 이럴 때 안내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이정표를 나 대신 읽고 가야 할 방향을 선택해 주길 바라거나 그럴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길 원하는 것이다. 그런 도움을 받고 그들의 안내를 따라 나선다 해서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길 같은 방향이라도 그 내부는 천차만별이다. 우리들의 얼굴이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용기, 인내, 노력 등이 동반되지 않으면 헛걸음에 그치고 만다.

인생길에서 이정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길동무다. 멀고 험한 길도 길동무가 좋으면 가깝고 편하다는 속담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그러나 길동무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진리를 모르거나 거부하는 어리석은 사람과는 같이 가지말고 고달프더라도 차라리 혼자 가라고 권한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이 어디 그렇게 무 자르듯이 쉽고 간결한가. 사람들이 늘 주변 사람들과의 복잡한 관계로 시달리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길동무를 구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의 훌륭한 길동무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아니 그러면 저절로 좋은 길동무가 생기는 법이다. 함석헌선생의 '만리길 나서는 길'이란 시는 좋은 길동무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처자들 내맡기며 맘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내맘이 외로울 때도 " 너뿐이야 "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살아다오 "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생략)>

바람직한 방향을 택해 용기와 노력으로 나아가며 좋은 길동무가 있다고 해서 인생길에 행복과 희망과 만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고통, 실망이 언제나 앞을 가로 막는다. 이럴 때 너무 쉽게 주저앉지 말라고 그 많은 노래와 시들이 인생길의 험난함을 묘사하고 강조한 것이다. 즉 인생길이 원래 그렇게 돼먹었으니 한두번 시련에 굴복하지 말고 강력하게 도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바탕을 알고 나면 때에 따라서는 무모한 전진보다 적당한 체념도 나쁘지 않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다. 포커, 고스톱 등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손에 든 패만 가지고 기뻐하거나 실망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노력과 포기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그렇게만 치면 험악한 꼴은 보지 않는다. 인생길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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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현대미포조선사보 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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