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2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09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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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놀기도 어렵다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초 강원도 춘천 부근에서 짧은 휴가를 보냈다. 휴가 성수기에 65평형 콘도가 비었으니 2박3일 이용하라는 어느 지인의 성의를 못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예정에 없던 휴가라 친지들에게 부랴부랴 SOS를 쳐 휴가팀을 긴급 구성해 목적지로 향했다. 자글자글 끓는 뜨거운 햇살에 에어컨을 켠 승용차안은 한증막처럼 후덥지근하다.

의암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콘도였지만 실내에서 어정쩡하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들고나는 사람들로 로비와 승강장은 붐볐다 '메뚜기 한 철 상혼'에 인근 재래시장이나 어디를 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물가는 비싸다.

호젓하게 보내고 싶어 계곡이나 냇가를 찾아 나섰다. 이름난 계곡은 피서인파로 북적거리고 앉을 만한 자리는 어김없이 자릿세를 내야한다. 결국 이름 없는 냇가 다리 밑에 자리를 잡았다. 장마가 스치고 간 뒤끝이라 냇물은 속살까지 비칠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바위나 자갈에 이끼조차 없어 어릴적 고향의 냇가에 온 듯 호젓하다.

마땅히 쉴 곳도 놀이문화도 다양하지 못했던 그 시절 천렵은 여름철의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어른들은 삼복더위를 피해 농사일을 하루쯤 접고 술추렴을 해 냇가로 나갔다. 막걸리를 풋고추에 찍어먹어도 꿀맛이다. 차고 넘치는 물고기를 잡아 얼큰한 매운탕을 즉석에서 끓여먹는 맛도 일품이다. 아이들은 반두나 어레미를 들고 으슥한 구석이나 풀 섶을 잽싸게 훑어낸다. 금새 모래무지 피라미 붕어 등이 몇 마리씩 잡혔다. 고기를 잡다가 지치면 개헤엄을 치기도 하고 입술이 파랗게 질리면 냇가에 나와 해바라기를 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시절이지만 마음은 넉넉했다.

요즘 주 5일제 근무제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근로자의 여가를 늘려 생활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데 누가 반대를 할 것인가. 더구나 경제개발 협력기구(OECD) 국가 중 주 6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라는데 '국제수준' 에 맞추는 것이 국제화 시대의 당연한 논리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휴가일수 조정, 임금보전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차이는 토요휴무(연 52일)에 따른 기존 연월차 휴가 등 휴가제도를 국제노동기구(ILO) 권장기준과 선진국 수준에 맞게 총 휴가일수를 조정하는 데 있다. 월차휴가 폐지 등에는 잠정 합의 했으나 근속연수에 따른 가산혜택 전폐, 연차휴가 상한선, 생리휴가 무급화, 할증임금률 등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월차휴가 폐지로 불이익을 받을 1년 미만의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대책도 필요하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한해 노는 날이 153∼175일로 거의 하루걸러 노는 꼴이 된다는 것이 대한상의의 주장이다. 선진국들에 비해 공휴일이 5∼9일이 많고, 월차 휴가, 경조사 휴가, 여성의 생리휴가 등이 더해져 총 140일 안팎인 선진국 휴일 수보다 10∼20일이 많다는 것이다. 늘어난 휴일은 산업사회에 미치는 영향말고도 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놀기가 일하기보다 한결 어렵다"는 호이징가의 주장처럼 쉬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천렵을 하던 시절도 아니고 척박한 여가문화속에서 일자리가 불안하고 여유가 없는 이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쉬어야 할지 또 다른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고 선진적 의료체계를 정착시킨다는 명분을 앞세워 무리하게 시행한 의약분업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5일제 근무제도는 충분한 여론 수렴과 철저한 준비가 전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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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
일요서울신문 편집인 겸 편집국장
200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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