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2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08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http://columnist.org
*딴 글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8월 20일 [그해오늘은] '인생은 아름다워'



지난달 제노바의 G8회담을 반대하던 좌파들 가운데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눈길을 끌었다. 레닌주의도 잠잠해진 마당에 실패한 트로츠키의 기치가 나부끼고 있어서다.

1940년 오늘 멕시코에서 스탈린의 자객에게 죽기 전에도 트로츠키는 불우한 혁명가였으나 그의 목소리가 오늘날도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도 젊은 시절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알제리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다고 실토했다.

막상 그 트로츠키주의가 무엇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서방에서는 물론 그를 추방한 스탈린의 동방에서도 모함으로 이지러져 있어서다. 그래서 사회주의 혁명은 소련 한 나라가 아니라 전세계에서 달성돼야 생명이 보존된다는 그의 '영구혁명론'은 '혁명 수출을 꾀하는 극좌 모험주의'라는 이미지로 더 알려져 있는 것이다.

그는 레닌과도 대립하다 볼셰비키 혁명 직전에는 손을 잡을 수 있었으나 혁명이 아닌 정권을 두고 다퉈야 하는 스탈린과는 화해의 접점이 없었다.

레닌이 죽자마자 스탈린은 그를 밀어내기 시작해 1929년에는 국외로 추방했다.

그는 터키 프랑스 노르웨이 멕시코를 전전하면서도 스탈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이를 잠재우려는 스탈린의 눈초리도 그 뒤를 따랐다. 수차례의 저격에서 살아남은 그였으나 비서의 여동생의 애인이라는 메르카텔이 내리꽂는 등산용 피켈은 피할 수 없었다.

그 메르카텔이 "나도 트로츠키의 신봉자였으나 멕시코에 와 보니 그는 반혁명분자였다"고 한 것은 백범을 존경해 한독당원이 됐다는 안두희의 횡설수설 같은 것이다. 그가 살인훈련을 받은 자객이라는 것은 트로츠키의 뒤통수에 7㎝ 깊이로 피켈을 꽂은 솜씨가 말해 주었다.

그런 살해위협을 받으면서도 트로츠키는 말년에 부지런히 저술을 하면서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했다. 이를 제목으로 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최근 미국서 선풍을 일으켰다.

-----
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1.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