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1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07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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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지니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꿈은 희망이다. 그것이 간절해지면 갈망이다. 또 꿈은 현실을 바꾸려는 이상이다. 인류의 역사는 꿈을 현실로 바꾸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숱한 발명과 발견과 새로운 사상은 꿈꾸는 이들이 이룬 것이다.

꿈을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을 절망이라고 이른다. 절망은 삶의 포기다. 그런데,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에게서도 내세에 대한 꿈을 보게 되는 수가 많다. 종교 단체에서 가끔 일어나는 집단 자살의 광란은 삶의 포기라기보다는 죽음에 대한 갈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잘못된 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꿈은 욕심이기도 한데, "마음을 비웠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사람들이 과연 무욕의 경지를 보였던가. 대개는 감춘 과욕을 참지 못하여 곧 드러내고 말았다. 마음을 비우겠다는 것까지도, 또는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 것조차도, 결국은 욕심이 아닌가.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크거나 작거나 모두 꿈이 있다. 어리거나 젊거나 늙거나 모두 꿈을 지니고 있다. 꿈 많은 시절이라고 하면 어리거나 젊은 때를 말한다. 노년이 되면 꿈이 줄어든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현실 세계의 모진 파도에 부딪혀 닳고 모지라지면서 우리는 지녀온 꿈을 하나 둘 내려놓게 된다.

노년이 되어서도 꿈이 많다면 그의 정신은 청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꿈이 사사로운 이익 챙기기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한다면 노욕(老慾)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한다. 손자들까지 벌지 않고 살 수 있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축재에 눈이 벌겋다든가,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다수에게서 원망 들을 일을 꾸미는 것은, 노욕이고 노추(老醜)다.

그러나 꿈이라고 할 때는 추하거나 악한 욕심은 빼는 것이 보통이다. 역시 꿈은 희망이나 이상이라는 쪽에 가까운 말이다. 흔히 젊을 때는 그런 꿈이 나이 든 분들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늙어도 여전히 꿈을 지니고 사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잊기 쉽다. 사실은 세월이 '꿈꾸는 동물'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그리 크게 바꾸지는 못한다.

꿈을 지니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또 노년의 꿈도 대개 유년기나 소년기 또는 청년기의 꿈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강봉길이란 분은 65세가 넘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하여 러시아문학을 공부했다. 이 분이 청년일 때 꿈이 러시아문학 연구였다. 한글 타자기에 바친 열정으로 유명한 공병우 선생은 89세까지 장수하고 1995년 작고했는데, 젊은 시절의 꿈인 한글의 기계화 처리를 위해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힘썼다.

한국의 근대사처럼 파란 많은 역사가 어디 있으랴. 러시아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은 국토가 분단되고 냉전체제가 시작되자 사상적으로 의심을 받을까봐 애장해온 서적들을 불태워야 했다. 그가 태운 것은 책이었지 꿈까지 재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와 국교까지 트이게 되자 그는 청년 시절의 꿈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강제적인 타자기 자판 표준화에 반대하다 국외로 나가야 했던 공 선생은 매킨토시 컴퓨터에 쓸 수 있는 한글 폰트를 손수 만들어 보급했다. 압제적인 군사 정부가 물러난 뒤 그는 귀국하여 세벌식 자판의 보급을 위해 고령인데도 밤낮으로 진력했다.

그대가 아직 젊고 꿈이 있다면 그 꿈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꿈으로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 꿈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 하며 그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위 두 분처럼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노년은 아름답다.

꿈을 지닌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꿈을 노년에까지 지닌다는 것은 더욱 행복한 일이다. 정신의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꿈이다. 젊은이의 꿈만 꿈이 아니다. 꿈 없는 젊은이는 꿈 있는 노인보다 젊지 않다. 마라톤을 완주한 81세 할머니는 전동차나 버스의 경로석에 앞다퉈 앉으려는 젊은이들보다 몇 갑절 젊다. 안타까운 것은 세상이 노인들을 푸대접하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험악해져서 직장마다 무 자르듯 나이 많은 이들을 잘라내니 나이 많은 것이 죄처럼 되고 있다. 이것은 나이 든 이들의 꿈을 밟아버릴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장래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심어 사회의 건강에 해롭다.

시인이 읊었듯이 나이가 들어도 무지개를 보면 소년처럼 가슴이 뛰는 것이다. 꿈은 그 자체가 항상 젊다. 늦은 나이라고 해도 꿈은 있고, 꿈을 지니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나이에 관계없이 꿈꾸는 사람이 많고 그 꿈들이 권력이나 정실이나 지연에 기대지 않고도 잘 이루어질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다. 많은 국민이 '코리안 드림'을 믿게 된다면 그 때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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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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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애경' 2001년 7월/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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