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7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304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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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三伏)

삼복(三伏)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복날은 설, 추석, 단오, 유두, 한식, 동지 등과 함께 옛 사람들이 즐기는 명절로 매년 일진에 따라 정해진다. 하지 이후 셋째 경일(庚日)이 초복이며 열흘 뒤인 넷째 경일이 중복이다. 그리고 입추 후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한다. 이에 따라 올해는 하지인 지난 6월21일 이후 첫째 경일인 26일(경신일), 둘째 7월6일(경오일) 다음의 셋째 경일인 7월16일(경진일)이 초복이고 넷째 경일인 7월26일(경인일)이 중복날이 되었다. 말복은 입추인 8월7일 다음 첫 경일인 15일(경술일)이 된다.

복(伏)은 사람 인(人)과 개 견(犬)자가 합친 회의문자(두개 이상의 독립 한자를 합하여 만든 새로운 글자)다. 즉 사람 옆에 개가 엎드려 있는 것을 만들어 '엎드릴 복'자라는 새 글자를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복날 보신탕을 먹는다고들 흔히 생각하나 문헌상에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이 없다. 또 伏자의 고대 상형문자를 보면 개가 엎드려 있는지 사람과 나란히 있는지 구분이 안 된다. 개고기를 혐오하는 서양인들이 보면 '봐라. 개와 인간이 나란히 서 있는 걸로 보아 그들은 친구가 아닌가' 라는 반론을 제기할 여지도 있다.

보신탕을 즐기는 이들한테는 약간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복날의 유래는 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조선조 광해군 때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의 '시령부' 가운데 '절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 있다. " 한서 동방삭전에 '복일'에 고기를 하사한다 하였고 양운의 글에 '세시와 복일과 납일에 양을 삶고 염소를 굽는다'고 하였다. 고증하여 보니 진나라가 처음으로 복날 제사하는 사당을 짓고 제사하였으며 한나라 풍속에서도 진나라 풍속을 그대로 좇았다" 또 "한서를 고찰하여 보니 복(伏)이라고 한 것은 음기가 장차 일어나고자 하나, 남은 양기에 압박되어 상승하지 못하고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으로 복일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럼에도 왜 복날이면 견공들이 재앙을 면하지 못하는가. 그 답은 음양오행설에 있다. 음양오행으로 보면 여름은 불 즉 화(火)에 속한다. 화가 극성하는 여름철에는 화가 쇠(金)를 누르는 병리적 현상이 일어난다. 쇠도 여기에 굴복해 엎드린다는 것이다. 이러니 인간인들 오죽하겠는가. 무기력해지고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에 해당하는 경일(복날)에 몸을 보충하여야 하는데 개가 또한 이 금에 속한다. 개들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고 분통터지는 설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으니 기가 막힐 것이다.

삼복기간에는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 근처에 다른 철보다 혈액이 많이 몰린다. 결과 위장과 근육의 혈액순환에 지장이 온다. 여름이면 식욕이 떨어지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는 것 시원찮으며 농사일은 힘겹던 전통사회에서는 이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복날 보신이라는 말로 영양섭취를 했다. 개장국, 삼계탕, 육개장이 이를 위한 주 메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도층 가정이나 고위층 인사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해 고기를 스스로 구하거나 정부에서 나누어주는 하사품으로 여름에 맞섰지만 농민 등 서민층은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소, 돼지는 한 가정의 생계를 좌우하는 큰 재산이었으므로 손대지 못하고 대신 집에서 기르던 개를 희생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날 하루는 그 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며 잔치를 벌였다. 봄이 오자마자 들판에 나가 일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한 날 쉬어 본 적이 있던가.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논과 밭일은 할 일이 쌓이고 아무리 해도 표가 나지 않는 힘든 나날이었다. 게다가 삼복더위까지 오니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스르지 않으면 가을 농사일을 하기 힘들 것이 뻔했다.

삼복은 그런 점에서 힘을 재충전하는 휴가였다. 이 기간에 농민들은 아직 농사일이 늦어진 집의 일을 도우며 협동정신을 새로이 하고 허약해진 심신을 보강했다. 남존여비의 굴레에서 허덕이던 여자들끼리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거나 바닷가에서 모래찜질을 하는 자유를 누리는 때도 삼복기간이었다.

조정에서부터 서민들까지 삼복동안 혹서를 이겨내고 가을을 준비하는 힘을 재구축한 것이다. 그리고 힘든 노동을 같이 해나가는 두레정신을 재다짐했다. 따라서 복날은 요즘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고 멋쩍은 얼굴을 하고 나오는 날이 아니라 여름을 이겨내려는 조상들의 지혜와 협동정신을 강조하던 과거의 전통이 살아있는 날이다. 박물관에 유물로 전시되고 만 것이 아니다.

4,5 년전 충청도 어느 지방에 갔더니 아직도 복날이 엄연한 명절로 지켜지고 있었다. 마을마다 들 어귀의 느티나무 아래 아니면 회관에 큰 가마솥을 걸어 고기를 삶으며 동네 잔치를 벌였다. 농악대가 풍장을 울리는가 하면 어느 동네에서는 이동노래방이 등장해 질펀한 한 마당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 가서 축하하는 뜻에서 한바탕 놀아주면 거기에서도 답방을 하여 흥겹게 판을 벌이는 등 마을간의 정도 더욱 두텁게 다졌다. 설,추석 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 날 서울 등 외지에 나간 젊은이들이 돌아와 동네 어른들과 하루를 지낸 흐뭇한 명절이었다. 복날의 원형이 그렇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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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쌍용' 사보 8월호 (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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