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 19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9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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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커녕

불길한 예감은 불행히도 잘 들어맞는다. 이번 경우도 그랬다.

가족행사 참석하러 미국으로 떠나오기 직전, 서둘러 쓴 원고를 보내면서 여행을 떠난다고 이메일로 알렸다. 별일이야 있겠는가 하고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 대학 숙소에 도착하여 대학 구내망에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한 뒤 이메일을 체크했더니 편집자에게서 편지가 하나 와 있었다. "여행중이라 어려우실 줄 알지만..." 원고를 새로 써 달라는 것이었다.

보내기 어렵다고 우선 답장은 해 놓고는, 되는 대로 한 편 새로 써서 보내 보려고 작업을 시작했다. 해변의 아열대 숲에 쌓인, 매혹적인 대학 캠퍼스 구경 계획은 뒤로 미뤘다. 컴퓨터를 연결하여 이메일을 보면서, 새삼 생각해 보니 이것이 아주 대단한 일이었다. 대학 구내 어디서나 건물 안 벽면의 단자에 랜 카드 낀 컴퓨터만 연결하면 바로 인터넷에 접속되는 것이었다. 이름을 묻지도 않고 비밀번호도 묻지 않는다. 무료 공중전화기나 매한가지다.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다고 이것저것 문전에서 물어 보는 것은 정말 후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손님을 성가시게 하지 않고도 보안이 유지된다면 구태여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대학에 며칠 들렀다 갈 손님에게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발급한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이렇게 편리해지면 편리해지는 대로 인간이 오히려 해방되지 못하고 점점 더 구속된다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메일이 없었다면, 또 그 것을 쉽게 볼 수 없었다면, 이 산타 바바라의 좋은 날씨에 숙소에 웅크리고 앉아 서울에 급히 보낼 원고를 쓰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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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벼룩시장 '즐거운 인터넷 여행' 200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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