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2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82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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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宗家)

한 친구가 딸의 애인 때문에 골치라며 걱정을 했다. 대학시절부터 사귄 이들은 결혼도 기 정사실화해 놓은 상태다. 딸은 언론사에 취직해 기자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 사윗감은 좀 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친구는 명문 가문 출신인 사윗감이 자기 고향에서 행한 일련의 축하행위에 대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이것이 자칫하면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 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청년은 맨 먼저 자기네 사당과 선산에 가서 합격증을 놓고 참배를 하는 등 전통방식의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그렇게 했겠는가. 가문에 서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 했는데 본인도 그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당 연하게 여기더라는 것이다. 자신도 양반가문의 후손으로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이해하기 어 려운 부분이 많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대는 급속히 변하고 있는데 새파란 젊은이가 예전의 과거시험 급제자가 했던 것과 비슷 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드러내 것에 대해 그는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런 가문의 후 손에게 시집가서 남자도 아닌 여자가 기자로 일하려면 딸이 얼마나 험난할까 생각하니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양반, 종가 등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은 대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해당 가문과 그 후 손들이 지닌 자부심과 긍지가 그 하나요, 전통사회의 엘리트로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충분 히 기여하지 못하고 민중의 삶에 도움도 되지 않았던 점을 반성하기는커녕 시대가 바뀐 오 늘날도 완고함과 고루함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는 부정적 시각이 다른 하나다.

이 두 시각은 지금도 곳곳에서 부딪치고 있다. 딸의 결혼을 앞둔 친구의 고민도 그 중의 한가지 사례라 하겠다.

최근 어느 학술단체의 지방문화답사에 참여했다. 경북 일원의 종가와 서원을 탐방하는 이 른바 테마기행이었다. 더구나 친구의 그런 고민도 들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관심이 남다르 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과거 양반들의 역할과 일부 맹목적인 후손들의 생활양식, 사고 방식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인 편은 아니어서 약간 부정적인 시각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나 1박2일에 걸쳐 약 10곳을 돌아본 뒤 예상과는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 하면 그 같은 두 가지 시각과는 별개의 가치를 종가들은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두 시각을 수정하거나 그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들 못지 않게 중요한 점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우선 몇 백년 세월이 그대로 고여있는 각 종가 고택들이 불러일으키는 자긍심을 들 수 있 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자랑스런 건물이 남아 있다니.... 유럽, 일본, 중국 등에는 몇 백년 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볼 때마다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백년은커녕 몇 십 년 된 건물도 드물 지경이다. 그런 속에서 비록 자기 가문의 것이라고 하나 유적과 유물을 최선을 다해 보관해온 후손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와 사회가 과거와 전통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허둥지둥할 때 그들은 조상과 가문 을 지키느라 최선을 다 했다. 특히 종손들이 감당해야 할 개인적 희생은 적지 않았을 것이 다. 물론 그 의도와 이면에 대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 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이런 고택들이 특정 가문의 유산일 뿐이라는 관념을 수정하 는 일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자랑이요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해당 가문들도 모든 국민의 긍 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넓게 열고 범사회적 차원에서 아끼고 가꾸어 나가는 길을 내야 할 것이다.

시간도 멈춘 듯한 고가(古家)들은 세상살이에 찌든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따뜻한 곳이기도 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귀중한 재산이 아닐 수 없다. 문화재 보호니 관광상 품화니 하는 상투적 언사들은 그 다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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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자연공원저널' 제9호 (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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