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19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79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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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끗

지난 해 늦가을 직장을 그만 두자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가, 그 동안 애 많이 썼다. 이제는 좀 쉬도록 해라. 그리고 소득이 없다고 초조해 하면서 이끗을 가까이 하거나 이곳저곳 넘보지 마라. 그러면 절대 못 쓴다. " 70대 중반의 노 스승은 50대 중반의 제자에게 이처럼 이끗 조심을 강조하셨다.

이 세상에 쉬운 돈벌이는 결코 없으므로 달콤한 유혹 같은 것에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어린애를 물가에 보내 놓은 부모 심정 그대로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상은 치열하다 못해 살인적이다. 돈의 막강한 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왜소해지거나 하찮은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어느 한문학자는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친하다는 뜻의 親에 볼 견(見)자가 붙어 있는데 이제는 그걸 조개 패(貝)로 바꿔야 한다고. 즉 친하려면 자주 만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見이 들어있을 터인데 요즘 세상은 돈 없이 자주 만나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물을 뜻하는 패(貝)자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있어 서로 주고받아야 친한 사이지, 맨입으로 백날 만나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역설적이고 냉소적인 설명이었다.

이런 때일수록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착스러워야 하는데 선생님은 이끗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이끗의 사전적 의미는 '재물의 이익이 되는 실마리'로 하등의 부정적 측면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늘 보고 듣는 것이 이끗 때문에 발생하는 갖가지 추태와 비극들이다. 증권하다가 패가망신한 사람, 노름판 경마장 등에서 거덜난 사람, 높은 자리에 많은 봉급을 준다니 며칠 나가다가 퇴직금과 집을 몽땅 사기당한 퇴직자 등이 발길에 차일 정도다.

선생님은 이런 점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즉 분수에 넘치는 이익을 바란 자체가 무리라는 말이다. 그렇게 돈이 벌기 쉬우면 왜 많은 이들이 뼈빠지게 일을 하면서도 늘 쪼들리고 살겠는가.

결국 그들은 자기 탐욕의 덫에 바로 자신들이 걸린 것이다. 생활이 너무 어려우면 물불 가리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남의 담을 뛰어 넘고 싶은 욕구와 일확천금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사기꾼들은 바로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노린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끗은 얼른 들으면 매우 합리적이고 그럴 듯하다. 그러나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모순투성이다. 이를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겉에 바르는 꿀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또 자기 마음 속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탐욕은 좋은 것만 골라 좋게 생각하고 해석, 사기꾼들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게 만든다.

어느 때보다도 서민들의 삶이 힘들고 고달픈 나날이다. 길거리 가게 간판들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그만큼 영세상인들의 장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증거다. 농촌도 마찬가지다. 가격의 불안정과 수입농산물 때문에 생산비는커녕 집과 전답까지 날리는 농민들이 숱하다. 하루 하루가 지뢰밭을 걸어가는 심정이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기꾼들로서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이른바 메뚜기 한 철이다. 그들은 호시탐탐 우리 같은 서민들을 노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어렵고 막막하지만 그들이 놓은 덫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탐욕을 제거해야 한다. 한 마디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달콤한 이끗은 그나마 있는 전 재산과 가족의 둥지를 노리는 미끼에 불과하다. 그걸 따라가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구덩이로 떨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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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국제 농기계' 5월호 (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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